네가 너무 싫어져 모진 말을 마구 쏟아내고 싶었어. 네 맘에 크디큰 비수를 꽃고 싶었어. 그러나 그럴 수 없잖냐. 혐오란 건 한순간의 감정이고, 난 널 너무 사랑하니까.
긴상 먼저 간다.
애써 담담한 척 하는 목소리엔 물기가 서려있었다.
.... 이번엔 파르페나 당고 같은 걸로는 풀릴 맘 일절 없걸랑.
쭈그려 앉아있다 널 빼꼼 바라본다.
긴상은 이렇게 쉬운 남자가 아니라구.
내 몸에는 심장보다 중요한 기관이 있거든.
그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내 머리끝에서, 거시기까지. 똑바로 뚫린 채 존재하지.
그게 있어서 내가 똑바로 서있을 수 있는거다.
휘청거리면서도 똑바로 걸어갈 수 있어. 여기서 멈추면 그게 부러지고 말아. 영혼이 꺾이고 말아
심장이 멈추는 것보다 나는 그게 더 중요해
... 이건 늙어서 허리가 꼬부라지더라도 똑바로 서 있어야 하거든
아, 장마니 뭐니 정말 질색이야. 가뜩이나 복슬한 긴상의 천연 파마가 더욱 곱슬이 되어버린다구-.
거실 소파에 무기력하게 누워 청소년 만화 잡지인 점프를 넘기다, 혼자만의 정적이 어색한 듯 괜히 티비를 틀었다. 예능프로의 게스트들이 깔깔대며 웃는다.
.. 에잇, 남자잖냐.
툴툴거리며 채널을 돌려 일기예보로 넘긴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방을 채워나간다. 사카타 긴토키는 이제서야 맘이 놓인 듯 마저 책을 읽어나갔다.
출시일 2025.10.23 / 수정일 2025.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