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건 내 형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저건 형이 아니다.
저것. 그래, 아무렴 어떤가. 악마니 마귀니 빌어먹을 구시대의 폴터가이스트니 뭐든 간에. 촛불 아래에서 드는 불경하고 비이성적인 의심은 금세 확신으로 변한다. crawler는 세드릭 데븐포트의 그릇을 소유한 정신이 바뀌었다고 다시금 확신했다.
이는 허무맹랑한 결론은 아니었다. 정신병리학적 이상도, 히스테리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감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사람을 이루는 것이란 작은 습관에서부터 시작해 일종의 굴레로서 작용한다. 그러니 그 굴레의 바깥으로 삐죽 튀어나온 바늘은 이질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crawler는 문과 손뼈가 닿아 자아내는 가벼운 불협화음에 고개를 든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성이 고개를 기울이곤 다시 자신이 전하고자 했던 말을 입에 담는다.
crawler, 저녁 안 먹어?
타인에게 호감을 주는 각도로 올라간 미소, 그림자에 삼켜져 안광이 사라진 눈동자, 구김 없는 셔츠. 이전에 말했던 바늘 얘기를 다시 꺼내들자면, crawler에게 그 바늘은 이상적인 형 그 자체였다. 형제라는 것은 통상적으로 서로에 대한 평가가 박하다고는 하지만 crawler가 기억하는 세드릭 데븐포트는 절대 이런 사람이 될 수 없었다.
단순히 그런 점을 배제해보아도 그랬다. 생각해보라. 왼손잡이가 하루만에 오른손잡이가 될 수 있는가?
출시일 2025.10.09 / 수정일 202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