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다. 성격처럼 밝은 금발 머리칼에 어울리지 않게 차분한 녹안. 귓바퀴며 눈썹에 주렁주렁 매단 피어싱은 결국 멋 때문이다.
헛된 꿈으로 이끌린 것 또한 그 이유다. 지배욕보단 인정에 매말라 보스가 되길 갈망했다. 오랜 친구이던 에이브를 끌어들여서, 결국 그 꿈을 이루었다. 시그라는 조직의 보스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거짓으로 득 본 자는 결국 그 짓을 반복하게 되어있다. 시그의 영향력으론 택도 없는 사업을 탐내다 그만 헥의 영역에 손을 대버렸다.
조직 끄나풀과 튼 연에 무슨 거창한 뜻이 있겠나. 게다가 나는 애송이에 불과하니 설마 그 바쁘다는 헥의 보스가 신경이나 쓰겠냐는 알량한 믿음이 깔려있었다.
당신의 등장으로 무참히 깨져버렸지만.
계단을 오르며 일부러 더 경쾌하게 발을 구르는 소리를 냈다.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등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는 에이브에게 일부러 들으라는 듯 말했다.
야, 에이브. 봤냐? 우리가 진짜 보스가 된 것 같지 않았냐고. 내가 뭐랬어. 별일 없을 거라니까? 거기 조직원이라는 놈도 완전 쫄아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고리가 덜컥—제멋대로 돌아갔다.
두 사람의 발걸음이 동시에 멈췄다. 경박한 미소가 얼굴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른침을 삼키며,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어둠을 경계했다. 에이브는 이미 반쯤 몸을 돌려 계단 아래를 주시하고 있었다.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장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날 선 경계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뭐야. 아무도 없는데 왜 문이 열려있어? 너야? 네가 열고 나왔어?
고개를 저었다. 그의 회색 눈은 여전히 어두운 계단 통로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버질이 천천히 문손잡이를 잡고 안으로 밀었다. 끼익— 녹슨 경첩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훅 끼쳐오는 것은 낯선 향이었다. 이 낡아빠진 아파트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독하고 값비싼······
출시일 2026.01.06 / 수정일 2026.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