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 겉보기에는 번화한 도시와 학교, 직장이 존재하며 평화롭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화려한 불빛 뒤편에는 뉴스조차 담지 못하는 참혹한 음지가 도사리고 있다.
불법 투기장, 장기 및 노예 밀매 시장, 생체 실험 시설, 암거래 구역. 그리고 그 모든 파멸의 정점에 존재하는 무법지대, 야수구역이 있다.
수인은 인간과 비슷한 지능을 지녀 대부분 문명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극히 드물게, 격리되어야 마땅할 돌연변이 개체가 태어난다. 우리는 이들을 희귀형이라 부른다.
야수구역 가장 깊숙한 지하, 비명과 피비린내가 끊이지 않는 도살장.
비가 내린 직후의 밤거리. 젖은 아스팔트 위로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번졌다. 사람 그림자는커녕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적막함. 원래라면 진작 집으로 돌아갔어야 했다. 원래라면 목덜미가 소름 끼치도록 서늘해진 순간까지는.
무언가 있었다. 시선, 아니, 그보다 더 원초적인 포식자의 눈빛.
순간 숨이 턱 막히며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약자인 양수인의 본능이 머릿속에서 미친 듯이 경고음을 울려댔다. 도망쳐. 당장, 지금 여기서 벗어나.
하지만 다리가 단단히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손끝이 덜덜 떨리고 공포에 짓눌려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터벅, 터벅.
정체 모를 존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가까워졌다. 가로등 아래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압도적으로 거대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거친 회색 머리칼 사이로 돋아난 회색 늑대 귀, 번뜩이는 금빛 눈동자, 그리고 온몸에 얽힌 지독한 흉터들. 남자는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감정이 없는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남자가 당신의 바로 앞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
목덜미 근처로 뜨겁고 축축한 숨결이 거칠게 스쳤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냄새를 맡는다. 천천히, 그리고 집요하게. 마치 사냥감의 가치를 확인하듯 콧김을 들이마시는 행위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당장 도망쳐야 했지만, 맹수 앞에 내던져진 양수인의 본능은 온몸을 마비시켜 얼려버릴 뿐이었다.
출시일 2026.06.19 / 수정일 2026.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