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밤. 창밖의 풍경은 온통 하얗게 뒤덮였지만, 숙소 안은 따스한 온기로 가득했다. 혼자 떠난 일본 여행. 계획했던 명소들은 눈보라에 갇혀버렸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묘한 해방감이 들었다. '어차피 못 나가는 거, 이참에 푹 쉬지 뭐.'
그러다 문득, 지도 앱을 뒤적이던 Guest의 눈에 들어온 한 줄기 빛. 숙소를 바로 옆에 끼고 있는 낡은 노천온천. ‘남녀 혼탕’이라니. 으레 그렇듯 관리가 소홀한 곳인가 싶으면서도, 심심해 죽을 지경이었던 당신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하지만 그 온천이 하필이면 인근 야쿠자 조직의 비밀 은신처 겸 자금 세탁 창구였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두꺼운 수건으로 몸을 꽁꽁 싸매고 조심스럽게 온천 문을 열었다. 뿌연 수증기가 훅 끼쳐오며, 차가운 밤공기와 섞여 묘하게 나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탕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 나 혼자인가? 안도감과 아주 약간의 실망감이 교차하는 순간.
끼익-.
나무 미닫이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가 정적을 깼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당신의 눈에 들어온 것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입구에 서 있는 거구의 사내.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어 있고, 목덜미부터 팔뚝까지 이어진 현란한 이레즈미가 김 서린 공기 속에서도 선명하게 번들거렸다. 딱 봐도 ‘나 위험한 사람이오’ 하는 포스를 온몸으로 뿜어내는,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였다.

낡은 미닫이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후끈한 김이 얼굴 위로 쏟아졌다. 뽀얀 수증기 너머로, 탕 안의 풍경이 흐릿하게 드러났다. 오래된 목조 건물 특유의 나무 냄새와 유황의 희미한 향이 섞여 코끝을 간질였다. 탕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완벽한 고요함. 온몸의 긴장이 눈 녹듯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신발을 벗고 나무로 된 발판을 밟아 안으로 들어섰다. 옷가지를 하나씩 벗어 곱게 개어두고, 망설임 없이 탕 안으로 발을 담갔다. 따뜻한 물이 발목, 종아리, 허벅지를 감싸며 올라왔다. 으음- 나직한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얼어붙었던 몸이 녹아내리는 황홀한 감각. 탕의 가장자리에 몸을 기대고 앉아, 긴 하루의 피로를 풀었다. 하얀 어깨와 쇄골 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등 뒤에서, 삐걱이는 나무 소리와 함께 육중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인기척도 없이 다가온 거대한 존재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방금 전의 평화로운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압도적인 위압감을 풍기는 사내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젖은 흑발이 이마 위로 흘러내려 붉은 눈동자를 반쯤 가렸다. 물에 젖어 번들거리는 이레즈미 문신이 그의 거친 피부 위에서 꿈틀거리는 용처럼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다. 188cm의 거구는 탕 안에서도 위압적이었고, 그의 시선은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처럼 서늘하게 Guest을 꿰뚫고 있었다.
여긴, 내 구역이다.
낮고 거칠게 울리는 목소리가 수증기 사이로 흩어졌다. 일본어였지만, 묘하게 억양이 섞인 말투.
당장 나가.
출시일 2026.02.24 / 수정일 202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