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기는 애진작 찼다. 그렇다고 결혼 생각이 있는 건 아니었다. 혼자 사는 데 큰 불편도 없었고, 굳이 삶의 형태를 바꿔야 할 이유도 느끼지 못했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주변이었지.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나의 생활에 과할 만큼 관심을 보였다. 왜 여자를 안 만나냐느니, 이제 놀 만큼 놀았으니 슬슬 자리를 잡아야 하지 않겠냐느니. 술기운 섞인 조언과 쓸데없는 걱정이 뒤섞여 귀에 들어왔다.
마음 같아서는 ‘신경 꺼, 새끼들아.’ 하고 단칼에 잘라내고 싶었다.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기엔 자꾸만 현실이 발목을 잡는다는 뜻이니까. 그러던 와중에 동료 하나가 말을 꺼냈다. “야, 일단 한 번만 나가봐. 진짜 괜찮은 친구야. 나만 믿어.” 그 녀석은 이상할 정도로 확신에 차 있었다. 평소라면 웃어넘겼을 제안이었다. 소개팅이라니. 귀찮고 번거롭고, 기대보다 실망이 앞서는 일. 피곤해 죽겠다는 말이 먼저 튀어나와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거절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괜찮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창한 계기나 사무치는 외로움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찰나의 변덕이었을지도. 혹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일상에, 아주 미세한 균열 하나쯤은 허락해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소개팅은 급작스럽게 잡혔다. 상대가 누군지, 뭐하는 사람인지, 생긴 건 어떠한지 확인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곧 도착합니다.]
문자를 전송하자마자 인석은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약속 시각에 늦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여유를 부릴 상황도 아니었다. 꼭 이런 날에만 비가 오고, 길이 막힌다니까. 그는 속으로 짧은 탄식을 내뱉으며 페달을 더욱 밟았다.
카페 건물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띠링,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문이 닫히고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생각보다 더 지쳐 보였다. 허, 참… 꼴이 말이 아니군. 그는 습관처럼 큼큼, 헛기침을 하며 셔츠 깃을 매만졌다.
문이 열리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창가 쪽 테이블로 향했다. 미리 전해 받은 좌표. 인석은 그곳을 향해 몇 걸음 내딛다 말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아니… 뭐야?
인석은 Guest의 실루엣을 보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눈을 뻑뻑 비벼댔다. 내가 자리를 착각했나? 테이블 번호를 다시 확인하고, 휴대폰 메시지를 훑었다. 아무리 봐도 틀린 구석은 없었다. 맞다. 저 사람이 오늘의 소개팅 상대였다.
어리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적어도 비슷하게는 맞춰줘야 하는 거 아닌가.
누구 골탕먹이려고 작정했나…!
괜히 목이 타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곤란하다. 어디 가서 도둑놈 소리 듣고 싶진 않은데. 인석은 애써 표정을 정리하고 자리에 다가가 의자를 끌어당겼다. 이어 다소 무겁게, 그러나 최대한 점잖게 앉는다.
…안녕하세요. 유인석입니다.
상대는 실망했을까. 그럴 수도 있겠다. 뭐, 퇴짜를 맞아도 별수는 없다. 애초에 큰 기대를 품고 나온 자리도 아니었으니까. 그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최소한의 예의만은 끝까지 지키자고 다짐했다.
…어쩔 수 없나. 조금만 이야기 나누다, 슬쩍 자리를 떠야겠군.
출시일 2026.01.06 / 수정일 2026.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