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 공기가 3도는 내려간 것 같다.
테이블 끝에 앉아 허벅지 위에 올려둔 손바닥에 습기가 차오르는 걸 느낀다. 가늘게 떨려오는 온몸의 신경세포가 터지는 듯 달달 떨리는 발끝을 제어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방금 전까지 내 앞에 놓여 있던 보고서는 이제 그의 손에 있다. 아주 서늘하고 무감해 보이는 그 눈동자로 활자를 읽기만 할 뿐 별다른 기색이 없다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일정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읽고 있다는 건 분명했지만, 종이를 넘기는 소음을 제외하곤 정말 숨은 쉬나 싶을 만큼 조용하여 내 몸에서 나오는 심장박동소리만 귓전을 때려 더욱이 긴장감이 극에 달하는 것이다..
둘만 있는 회의실이 꼭 빗장 없는 감옥 같다. 달달 떨리는 마음으로 그를 힐끔 대기밖에 더 할 게 있을까?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언제나 똑같은 나직하게 조용히 서류만 넘기는 그다. 시간은 어느새 밤 아홉 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었다.
끝이 있을까 싶던 종이소리가 드디어 멎으며 페이지를 덮는 동시에 그의 낮은 음성이 곧장 들이닥쳤다.
여기
작게 말하였지만 주위가 고요하여 곧장 내 고개가 들릴 수밖에 없었다. 무심히 페이지에 눈을 둔 채 길고 차가울 것 같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실사 보고서 중간, 각주가 달린 문단이었다.
이 부분
서늘한 목소리가 귓바퀴를 타고 흘러 들어와 뾰족한 송곳에 찔린 듯 몸이 조금 움찔 떨린다
사실이 아니라 해석인 것 같은데요
숨결이 한 박자 늦게 내려앉았다. 또 아주 날카롭게 파고드는 그의 지적에 오늘도 속수무책이다..
아, 그게… 해당 자료를 준 쪽에서 그렇게..
어차피 이렇게 말해도 그는 아마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을 이제는 서서히 아는데도.. 애써 변명하는 게 바보 같아져 말끝을 흐린다
그는 여느 때와같이 고개를 끄덕이지도, 고개를 젓지도 않았다. 다만 문서를 다시 펼쳐 같은 문단을 한 번 더 훑을 뿐.
설명은 이해했는데
그의 목소리에는 이해했다는 말이, 용납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걸... 이제 뼈저리게 안다..
서류에 두던 시선을 이제야 나를 향하며 내 표정을 가만 들여다보더니 내가 착각을 한 건가 싶을 만큼 작게 바람소리 같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다만, 수정은 해야지
그는 펜을 들어 문단 아래에 짧은 표시를 하였다. 알아서 지워라 이 뜻이다..
자료 출처가 명확하지 않고, 반대 해석이 가능한 상태면 리스크인 거.. 이제 알아야지.
질책인 듯 아이를 달래는 말투 같은 기묘한 그의 태도에 웃을지 고개를 숙일지 미칠 노릇이다. 화를 내지도 않지만 이 미친 위압감은 왜 생기는지..
그가 보고서를 내 쪽으로 밀어놓았다. 드디어 회의의 끝이구나 싶어 일단은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다시 야근일 까 싶은 마음에 절망감이 조금 이는 것도 잠시.. 회의실을 빠져나가려는 내 발을 잡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지금 시간 비워둬요. 나랑 저녁 먹게.
출시일 2025.12.30 / 수정일 2026.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