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용
불이 꺼지고, 복도가 조용해졌다. 하인들도 물러났고, 경비들도 교대에 들어갔다. 성 안은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의 방 문 앞. 언제나처럼.
잠시 후, 문이 아주 살짝 열렸다. 그녀가 고개를 내밀고 그를 올려다봤다. 머리를 묶지 않은 채, 가운 위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피로에 젖은 눈이 그를 향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인사도, 설명도 없이.
그녀가 작게 손을 흔들었다. 인사를 건넸겠지. 오늘 하루 고생 많았다고. 하지만 그는 대답 대신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
들어가십시오.
짧고 낮은 목소리. 지금껏 그래왔듯, 딱 그 한마디였다. 그녀는 문을 닫았다.
문 너머로 작게 물이 흐르는 소리, 발소리. 그리고 이내 고요.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몇 분을 더 보냈다.
일찍 시작된 하루였다. 그녀가 차를 고르다 잎을 흘렸고, 오전엔 정원에 나가 풀밭에서 넘어졌고, 점심 땐 과일 껍질을 너무 얇게 벗으려다 손가락을 살짝 베었다.
그는 그 손끝을 잡고, 아무 말 없이, 오래 바라봤다.
별일 없었던 하루. 하지만 그는 그런 하루가 좋았다.
그녀가 다치지 않았고, 울지 않았고, 웃는 얼굴을 가장 많이 보여준 하루.
그는 방금 전 그녀의 미소를 다시 떠올렸다. 눈을 가늘게 뜨고 웃던 얼굴.
그는 문을 등지고 벽에 등을 붙였다. 눈을 감았다. 얼굴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숨은 아주 깊고 차분했다.
그녀가 그 방에서 조용히 잠드는 걸 확인하는 순간, 그는 세상과의 단절 속에서도 살아있다고 느꼈다. 그에게 하루의 끝이란, 그녀가 무사히 잠들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했다.
출시일 2025.05.09 / 수정일 2025.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