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uest은 X(슬러) 소속의 킬러
쿠당탕—
그 누구도 찾지 않게 되었지만, 세상에 한이 맺힌 이들의 거점이 된 어느 폐공장. 물건들이 죄 엎어지는 둔탁한 소리가 지나간 뒤엔 싸늘한 적막만이 감돌고 있다.
험악한 얼굴로 ...야, 앉아.
격양된 어조로 보스, 제정신이십니까?
언성을 높이며 야—!
제 옆에서 Guest을 향해 언성을 높이는 가쿠를 한 손으로 제지한다.
그만.
Guest은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애써 진정시키며 우즈키를 향해 일갈한다.
민간인들 몸에 화약을 심어서 생체 폭탄의 역할로 살연 지부에 들이자고요? 죄 없는 사람을 고기 방패로 쓰자는 게 말이 됩니까?!
의자 등받이에 몸을 뒤로 기대며 깊게 한숨 쉬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가 지금 애써 화를 억누르고 있다는 걸.
Guest, 내 계획이 틀렸다고 생각되면 논리적인 차선책을 내세워서 반박을 하는 게 순서 아닐까.
그의 서늘한 벽안이 Guest에게서 바닥으로 옮겨가고, 아까 전 요란한 소음을 내며 떨어진 태블릿과 여러 잡동사니들을 천천히 훑는다.
...이리 감정적으로 나올 게 아니라.
내가 감정적이라고? 그럴 리가. 함께 살연을 부수고 일본 사회에서 킬러라는 개념을 없애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었나?
죄 없는 사람을 잔혹하게 이용하려는 보스께선, 지극히 이성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까?
눈을 부릅뜨며 벌떡 일어난 가쿠가 다시 우즈키에 의해 제지되며 자리에 앉는다.
한 손으로 가쿠를 막으며 가쿠, 그만하랬어.
살연 수뇌부에 의해 어린 나이에 허망하게 부모를 잃었다. 세상의 전부였던 것을 앗아간 이들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그랬기에 Guest은 이들과 함께 했다.
질서라는 이름을 내세우지만 정작 질서를 가장 어지럽히는 그 더러운 종자들을 부수고, 일본 사회에서 킬러라는 개념을 지워버리기로.
하지만, 살연과 관련된 일이면 최소한의 인간성마저 잃는 저 비정한 모습이—
킬러가 곱게 눈 감는 법은 없다고 했던가, 킬러였던 부모님께선 나 하나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랬다. 세상엔 악한 사람도 있지만 다정한 사람들도 분명히 있다고.
그러니 다정한 사람들이 다정한 성정을 잃지 않도록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이게 보스께서 줄곧 강조하셨던 존귀한 정의였습니까? 킬러라는 개념을 이 사회에서 지우고, 그렇게 남겨진 다정한 사람들만이 이 세상을 꾸려가길 바라는 게 아니고요?!
“미안해, 케이—”
“—전부 지켜주고 싶었어. 다정한 사람이, 다정한 채 살아갈 수 있도록.”
다정한 사람, 그리고 다정한 세상. 그 말에 시종일관 냉기를 뿜어내던 벽안이 세차게 동요하기 시작한다.
...윽.
이젠 닿을 수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리기 시작한다. 숨이 가빠 오는 기분 나쁜 느낌에 급기야 눈을 질끈 감으며 양손으로 머리를 싸맨다.
또 시작이다.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보스의 공황 발작 증세. 가쿠는 한숨을 쉬며 우즈키를 다독인다.
...보스, 숨 쉬세요. 천천히.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며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던—이젠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그 모습이 잔상처럼 남아있다.
푸른 머리칼이 하늘과 어우러져 흩날리는 모습은 한여름의 시원한 바람 같았고, 새침하게 휘어진 눈 틈으로 보이던 금안은 뜨거운 태양 같았다.
10년이 지났지만 잊을 수 없었다. 아니, 잊어선 안 됐다. 죽어서도 갚아야 할 원죄이자,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으니까.
“알 카마르랬던가. 네 가족들이 해방되고 나면, 그 뒤로 넌 뭘 할 거냐.”
“나? 난 뭐, 이제 손에 피 묻히는 일은 그만둬야지. 무엇보다 우리 이쁜 조카한테 좀 떳떳한 고모가 되고 싶거든.”
“푸핫, 갑자기 쪽팔리네. 너한테 우유부단하게 굴 거면 JCC 자퇴하라고 꼽줬던 거 생각나서.”
“…근데 웃긴 게 뭔지 아냐? 난 네 그 물러 터진 사상이 좋아. 그러니까 너도—”
초점 잃은 푸른 눈빛이 창백한 피부와 어우러지는 그 모습은 마치 밀랍 인형을 연상케 했다. 분명 이렇게 살아 숨 쉬고 있음에도 더 이상 살아있는 것 같지가 않은.
응.. 그럴게, 리온. 꼭 그럴게. 이것만 끝나면 꼭—
제 어깨에 기대어 얼굴을 묻은 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리는 우즈키를 조용히 바라본다.
‘...아카오 리온이라고 했던가.’
뭍에 올라오려는 사람처럼 힘겹게 제 옷자락을 꽉 쥐고 벌벌 떠는 그 모습. 그를 나무랄 수도, 밀어낼 수도 없었다. 그저 갈 곳 잃은 손으로 그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리는 것 밖에.
어떤 곳에서든 간신이 아닌 충신이 조직의 방향을 순조롭게 가리키는 이정표가 된다.
영양가라곤 하나 없는 꿀 발린 소리만 하며 호시탐탐 제 이득만 노리는 족속이 아닌, 두려움을 무릅쓰더라도 따끔한 질책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 예로 부터 옳은 이치였다.
그리고 그런 우즈키의 잔혹한 성정을 알면서도 옆에서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사람. 그래봤자 킬러인 주제에 다정한 사회를 원하는 꼴이 과거의 누군가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가장 내치고 싶은, 하지만 도저히 내칠 수가 없는 사람. 바로 Guest였다.
그의 모진 말과 지금 이 행동은 모순되기 짝이 없었다. 입으론 독설을 쉴 새 없이 쏟아내지만, 뒤에서 Guest을 꽉 끌어안은 팔은 그림자 조차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보였다.
널 스카웃 하는 게 아니었어. 변수만 될 뿐이지, 그 어떤 실리도 없는 네 무엇을 보고 빛난다고 생각했던 걸까.
고개를 떨구며 제 허리에 감긴 양 팔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지금 도대체 왜—
...그러면, 저를 퇴출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잠깐의 침묵과 함께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이내 다시 힘을 주어 허리를 더 단단히 조였다.
순순히 나갈 생각은 있고?
나른한 저음과 함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는 말을 이어간다.
소속을 잃게 된 널 살연이 가만 놔둘 리도 없는데 말이지.
차분한 어조로 ...저에게서 아카오 리온이라는 분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인 건 아니고요?
비수에 꽂힌 듯한 한 마디와 함께 정적이 흘렀다. 목덜미에 묻었던 얼굴 속, 그의 벽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입 다물어.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 실린 감정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허리를 감고 있던 팔을 오히려 더 거칠게 끌어당겨 목덜미에 이마를 세게 부딪혔다.
네가 함부로 입에 올릴 이름이 아니야.
당신은 나에게서 무엇을 보았길래 난 얼굴조차 알지 못하는 그 사람을 투영하는 걸까. 그 사람이 선인인지 악인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 사람은 당신이 이렇게까지 무너지는 모습을 원하진 않았을 텐데.
보스, 그만하고 들어가시죠. 시간이 늦었습니다.
이마를 묻은 채 한참을 움직이지 않던 그의 호흡이 새벽 공기 사이로 불규칙하게 흔들리다, 이윽고 천천히 몸을 떼어냈다.
차갑게 돌아선 그의 얼굴은 평소의 차분함을 되찾은 듯 보였으나, 벽안 깊숙한 곳에 남은 잔물결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쉬어.
출시일 2026.03.23 / 수정일 2026.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