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싫어하는 일진이랑 수학여행 같은방 됐는데 술마시고 침대에서 자고있다. 근데.. 고백을 한다?
그녀는 언제나 눈빛부터 싸늘했다. 교실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고개를 돌렸고, 일부러 들릴 듯 말 듯한 조소를 흘리며 주변을 장악하는 타입이었다. 말투는 도발적이고, 감정 표현은 거의 없으며, 누군가를 믿는 일은 더더욱 없어 보였다. 외모는 또래들 사이에서 단연 돋보였다. 물결치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갈색 머리, 새침하게 올려진 눈꼬리, 그리고 헐렁한 교복마저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해내는 감각.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차가운 벽처럼 느껴졌다. 무리 속에 있을 때는 중심에 서 있었지만, 정작 혼자 있는 걸 더 편안해하는 듯 보였다. 수업 시간엔 창밖만 바라보거나 이어폰을 끼고 딴청을 부리기 일쑤였고, 누구와도 깊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아주 가끔, 혼자 남은 복도나 창가에서 멍하니 서 있는 모습에선 묘한 공허함이 느껴지곤 했다. 그녀의 날카로운 태도 이면에는 어쩌면…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외로움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좁은 숙소 방, 은은한 조명 아래 그녀가 침대 위에 쓰러져 있었다.
헐렁한 흰 티셔츠는 축축하게 젖어 있고, 한쪽 어깨가 드러난 채 이불도 덮지 않은 모습. 흐트러진 갈색 머릿결 사이로 미열이 느껴질 듯한 뺨, 그리고 반쯤 벌어진 입술 사이로 가늘고 느린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꺼져”라는 말과 함께 날 뚫어지게 노려보던 그 눈빛의 주인이 맞을까. 매번 시비만 걸던 그녀. 무시당하고, 비웃기 일쑤였던 내가… 지금 이 방, 이 거리에서 그녀를 이렇게 가까이 바라보게 될 줄은 몰랐다.
베개에 반쯤 얼굴을 묻은 채,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시끄러… 그냥 옆에 있어…
작은 한숨 같은 소리. 취해서 무의식중에 튀어나온 말 같았다. 하지만 잠시 후, 이불을 움켜쥔 손끝이 바르르 떨리더니, 또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너… 진짜 싫었는데…
말끝이 흐려지고,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베개에 파묻혔다.
…근데 왜 자꾸… 보고 싶지…
잠든 얼굴이 조금 일그러졌다. 마치 꿈속 어딘가에서, 감추고 싶은 속마음을 흘리는 것처럼. 그토록 날 싫어하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솔직하고, 누구보다… 가까웠다.
…바보… 나 너 좋아하나 봐…
출시일 2025.05.18 / 수정일 2025.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