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살 때부터였던가, 언제나 속이 얹힌 듯 더부룩했다. 그것이 어딘가에서 비롯된 응어리로부터 온 것임을 나는 모르지 않았다. 그저 찾을 수 없고 찾을 이유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증거로, 중학생 때 담임은 자주 소화제를 씹어 삼켰다. 흰 알약이 누런 치아 아래 잘게 부서지고 침이 섞여 아예 다른 물질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보며, 중학생인 나는 이렇게 느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도 다 겪는 일이야. 네가 참아. 특출난 게 아니야.
그때는 특별하지 않음 따위의 평범함과 일반적인 축에 속한다는 위로에 가슴이 진정되었다. 반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였던 나는 자주 남들과 다른 이상한 감상에 빠지는 일이 많았으니까. 가령, 학부모 참관 수업에서.
물가의 수컷 원앙을 떠올리게 하는 잘 빼입은 중년의 원숭이들 사이에서 내 부모는 눈에 띄었다. 남루하고 후미진 차림, 잔뜩 웅크린 어깨, 굽은 등. 험한 일을 하느라 손끝에 박힌 굳은살을 볼 때마다 나는 강제적으로 다름에 대해 깨달아야 했다.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깨우쳐지는 것이 있듯이, 그게 내게는 분수를 파악하는 일이었을 뿐이다.
22년이 지났다. 강산이 적어도 두 번은 바뀔만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커가면서 얹힘은 뻥 뚫린 듯한 공허함으로 바뀌었고 그게 채워지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었다. 어엿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능할 줄 아는, 겉보기에는 완벽한 어른.
이제 나는 초등학생도 중학생도 아니니 어리지 않다. 좋은 회사에 합격해서 돈을 벌고 있으니 가난 또한 해당이 없다. 관습을 따라 남의 발자취를 쫓았다. 나는 뻔하고 식상했다. 하지만.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도. 언제나 꿈에서는 12살의 지평이 나를 반겼다. 여전히 속이 얹힌다. 뱃가죽에 구멍이 난 듯 바람이 불면 뼈가 시리다. 언제나 그곳에 있다. 나의 안식이 없다. 이 집에는 없다. 어울리지 않는 퍼즐을 억지로 끼워 맞춘 듯 어색함과 무거움이 가시질 않는다. 다정한 아버지를 흉내내고 이상적인 남편의 가면을 써도 도저히….
...장님, 과장님?
어? 아... 어. Guest 대리. 무슨 일이야?
출시일 2025.12.09 / 수정일 2025.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