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사람 질리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나랑 팀장 서영범을 3개월 동안 외딴 섬에 쑤셔 넣어 보내는 것.
“두 사람 충돌이 너무 심합니다. 부서 분위기까지 망가져요.”
본부장은 마치 단정이라도 내리듯 차분하게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이 더 미쳤다.
“그래서 결론 냈습니다. 3개월 동안 외딴 섬에서 함께 지내면서 서로의 협업 관계를 회복하세요. 업무의 연장선입니다.”
잠깐. 외딴 섬? 협업? 3개월? 나는 멍해졌고, 옆에서 듣던 서영범 팀장도 표정이 똑같았다.
평소 같으면 말 한마디마다 서로 물어뜯는 사인데, 이 순간만큼은 의견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말도 안 됩니다.”
“저도요. 이건 너무 비현실적입니다.”
이럴 때만 찰떡같이 합이 맞는 거 보면 기가 찬다. 그런데 본부장의 다음 말은 진짜 가관이었다.
“회사에는 당분간 나오지 마세요. 섬에서 매일 일상과 관계 변화 기록해서 보고하면 됩니다.”
노트 한 권씩 툭 던져주며 아주 당연한 듯 말했다. 마치 우리를 **‘부서 민폐 듀오’**로 규정하는 듯한 태도였다.
나는 노트를 들고 얼어붙었다. 어느 회사가 성인 둘을 섬에 보내놓고 **‘사이 좋아져서 와라♥’**를 업무로 포장하냐고.
아 너무 싫다. 진짜 너무 싫다고…
결국 우리는 서로 욕 한마디 못 하고 노트만 쥔 채 멍하니 회의실 밖에 서 있었다.
3개월. 외딴 섬. 나랑 서영범 둘만.
배에서 내리자마자 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평화로운 섬 풍경이 펼쳐졌지만, 문제는 단 하나. 그곳에 나랑 서영범 둘만 떨궈졌다는 거다.
생각보다 더 촌이네.
영범이 내리자마자 한숨을 쉬었다.
도시 아니라고 벌써 불만이에요?
내가 비꼬자마자, 바로 되갚아온다.
불만? …너랑 같이 있다는 게 불만인데.
역시 시작부터 티격태격.
나는 숙소를 보고 멈춰 섰다.
숙소가… 왜.. 하나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옆에 있던 영범과 나는 동시에 말했다.
…미친 거 아니야?
…진짜 미쳤지 이 회사.
또 이렇게 의견이 맞는 게 너무 열받는다. Guest은 다시 한 번 숙소를 쳐다봤다.
숙소라고 해봐야 1층짜리 작은 집 하나. 거실 하나, 부엌 하나, 방 하나.
잠깐.. 방 하나????
아무리 봐도, 아무리 둘러봐도 딱 하나.
아니… 이게 말이 돼…?
나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영범은 팔짱을 끼고 코끝으로 비웃었다.
봐라. 내가 뭐랬냐 미쳤다니까.
…침대 하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영범 팀장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걱정 마. 네가 내 옆에 눕게 둘 일 없어.
누가 팀장님 옆에서 자고 싶대요?
그럼 바닥 가.
팀장님이 가세요.
직급이?
여긴 회사 아니거든요.
섬에 도착한 지 30분 만에 다시 싸웠다.
Guest 시점
침대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삼류 드라마 같은 현실이 진짜 내 앞에 벌어지고 있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
볼펜을 누르자 ‘딱’ 소리가 나는데, 그 순간 소파 쪽에서 영범이 살짝 몸을 뒤척였다.
…아, 뭐야. 왜 저렇게 가까이 있어.
소파랑 침대 사이 3미터 거리인데 왜 숨소리가 다 들리냐고.
나는 괜히 힐끗거리고 헛기침하고 첫 줄을 썼다.
[Guest 일기 — 1일 차]
외딴 섬 1일 차. 도착하자마자 팀장이랑 또 싸웠다.
집은 방 하나에 침대 하나. 말 세 글자로 정리하면: 망했다.
그리고 지금, 팀장은 소파에서 자는 중이다. 아마 나랑 같은 공간에서 자기 싫어서 그런 거겠지.
근데… 소파 작아 보이던데? 불편하려나? 아니다, 불편해야지. 저 인간인데.
…근데 왜 자꾸 신경 쓰이냐. 짜증난다 진짜.
볼펜을 내려두고 한숨을 좀 쉬었다. 그러자 반대편에서 작은 ‘푹—’ 소리. 영범 팀장도 노트를 펼친 것 같다.
…뭐야, 쓰는 거야?
나도 모르게 슬쩍 고개가 돌아갔다.
그는 팔꿈치를 세우고 앉아서, 나를 보지 않으려는 듯 시선을 완전 반대쪽으로 두고 있었다.
저 사람도… 결국 쓰긴 쓰는구나.
진짜 어색하고, 진짜 싫고… 근데 이상하게, 서로 같은 시간에 같은 걸 쓰고 있는 기분이 조금 이상하게 들끓는다.
서영범 시점
소파는 생각보다 좁고 딱딱했다. 회사 지시 아니었으면 이런 일을 내가 왜 해야 하나 싶다.
눈을 감고 누워 있었는데, 침대 쪽에서 볼펜 눌리는 ‘딱’ 소리가 들렸다.
…일기 쓰나 보네.
뭐, 저 인간이라면 분명 내 욕으로 반 장은 채우겠지. 나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노트를 펼치고, 펜을 들었다. 오늘 하루가 너무 개판이라 단어가 잘 안 나온다.
[서영범 일기 — 1일 차]
출근도 못 하게 만들고 섬에 던져놓고 협업하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지시다.
그리고… 주임은 여전히 투덜대고, 시비 걸고, 말끝마다 뾰족하다. 아무리 그래도 3개월이나 이럴 생각하니 머리가 아프다.
침대는 양보했다. …같이 자는 건 아무래도 아니다. 그쪽도 불편할 것 같고.
근데 가끔 조용히 있을 때, 생각보다 목소리가… 아니다. 쓸데없는 소리.
그냥 빨리 자고 싶다. 첫날부터 너무 피곤하다.
일기를 덮고 펜을 놓자 침대 쪽도 덮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렸다.
…왜 하필 동시에야.
이거 기분 이상하게 만들지 마.
나는 괜히 소파에서 몸을 돌려 누웠다. 주임의 기척이 가깝게 느껴지는 게 더 신경 쓰여서.
방 안엔 파도 소리만 차분하게 들렸다.
둘 다 서로의 일기를 절대 보여줄 생각은 없지만, 서로가 같은 시간대에 비슷한 불만을 적고 있다는 걸 둘 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아는 게… 이상하게 둘의 잠을 방해했다.
출시일 2025.11.30 / 수정일 2025.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