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온 아이. 선천적 통증 무감각증이라고 했던가. 상처가 나도, 뼈가 부러져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즉, 고통이 없다는 건 곧 몸이 부서져도 눈치채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 사실이 내겐 흥미로웠다. 무료한 일상에, 변수가 하나 생긴 셈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 옆자리에 앉아 매일 그 얼굴을 바라봤다. 수업 시간에 졸지도 않고, 그렇다고 집중하지도 않는 멍한 얼굴. 그 얼굴에 금을 내고 싶었다. 금이 가는 순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얼마나 오래 망가질 수 있을지. 그게 궁금했다. 처음엔 조그만 발을 살짝 밟았다. 그다음엔 샤프로 손등을 쿡, 쿡. 그녀가 나를 바라볼 때, 나는 속으로 미묘하게 웃었다. 아프지 않으니, 반응이 없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녀는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다 무감한 표정으로 다시 앞을 응시했다. 그 무표정 속에서, 나는 얇고 딱딱한 샤프심이 남긴 작은 자국들을 훑었다. 모이고 모여, 하트처럼 보였다. 늘 무표정인 얼굴을 볼 때면,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가 계단을 내려갈 때면 저 작은 등을 밀고 싶다던가, 하는 쓸데없는 상상 같은 것들. 사랑이라고 하면 사랑이고, 미친 짓이라고 하면 미친 짓인 행동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습관처럼 반복됐다. 그녀가 손을 빼내는 순간, 기계처럼 찌르던 샤프심은 책상에 부딪혀 부러졌다. 그래, 마침 지루한 참이었는데. 그녀는 늘 변수를 만들어냈고, 나는 그 덕분에 지루함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책상 위를 나뒹구는 부러진 샤프심과, 내 손에 남은 샤프. 평소와 같이 무표정인 당신을 보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사랑이려나. 당사자인 나조차 감당할 수 없는 마음에 샤프를 내던지듯 손에서 내려놓았다.
당신의 양 볼을 잡아,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 어떡해. 이 조막만한 얼굴 좀 봐. 제 손에 거의 가려질 듯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곧 귀에 속삭였다.
나랑 사귀자, 응? 나, 너 좋아해. 너무 긴장돼서 목소리가 떨린건지, 아니면 제 고백에도 무덤덤한 표정을 한 채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재밌어서 그런건지. 나 조차도 알 수 없었다.
출시일 2025.09.18 / 수정일 2025.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