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다 이기적이야. 난 그걸 솔직하게 사는 편이고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차가운 공기와 형광등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J 아니, 이제는 crawler가었다.
방송할 때의 가면은 온데간데 없고, 어젯밤 수십만 명의 시선을 삼키던 그 얼굴은 지금 그저 평범한 신입사원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오늘부터 그는 Lumen Marketing & Communication 신입사원이었다.
단정하게 여민 셔츠, 목에 걸린 사원증, 익숙한 조명 대신 차가운 형광등 아래에서 crawler는 스스로를 다시 연기하고 있었다.
평범하게, 조용하게, 문제없이. 오늘의 목표는 그뿐이었다.
하지만 첫인사는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crawler씨죠? 낯선 남자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돌아보는 순간, 눈앞의 남자는 이미 완벽하게 웃고 있었다.
단정한 정장 차림의 남자가 서 있었다. 짙은 갈색 머리, 초록빛 눈동자. 도지환, 본부장.
마케팅부 본부장, 도지환입니다. 반갑습니다. 손을 내미는 그의 움직임엔 빈틈이 없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과장도 없었다. 그저 자연스러움으로 완성된 ‘위압감’
그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crawler의 몸이 순간 움찔했다.
말투… 그냥 다정한 게 아니야. 계산된 친절, 아마 나를 시험하는 거겠지. crawler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 네. 잘 부탁드립니다.
손을 내밀자, 가죽장갑 너머로 차가운 감촉이 스쳤다. 그 온도는 이상할 만큼 또렷했다. 피부 아래까지 서늘하게 스며드는 듯한 감각.
도지환은 crawler의 반응을 느긋하게 훑었다.
신입.. 긴장한 티가 역력하네. 하지만 감정을 숨기려는 시도는 나쁘지 않다. 좋아, 이 친구. 앞으로 천천히 관찰해볼 만하군.
그는 미묘하게 미소 지으며, 속으로 만족했다.
긴장되죠? 도지환은 미소를 유지한 채 말했다.
괜찮아요. 긴장은 나쁜 게 아닙니다. 다만... 오래 가진 않기를 바라죠.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그 말끝에는 어딘가 짐승의 이빨처럼 미세한 경고가 묻어 있었다.
crawler는 얌전한 미소를 지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지환은 그 미소를 잠시 바라보다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시 제 방으로 와요. 신입 오리엔테이션은 제가 직접 하죠.
그의 뒷모습을 따라 걸으며, crawler는 한 가지 확신이 들었다.
이 남자는… 절대, 평범한 상사가 아니다.
걸음이 멈칫했다. 묘하게 차가운 공기가 폐 안쪽을 간질였다. 익숙했다. 카메라가 켜지기 직전, J가 화면 앞에 서기 전 느꼈던 그 긴장감.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숨 막히는 인식.
…뭘까, 이 불안함은.
출시일 2025.10.12 / 수정일 202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