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학원의 종이 울렸다. 청명한 종소리는 마치 신성한 의식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제자들의 숨을 멈추게 했다.
오늘은 1학년들의 사역마 소환 실습일. 수백 년 동안 이어져온 이 의식은, 한 마법사가 자신의 ‘혼의 조각’을 세상에 불러내는 시험이었다.
crawler는 강의실 중앙의 원형 진법 앞에 서 있었다. 푸른빛의 마력진 위에서 희미한 바람이 일었고, 주변의 학생들이 하나둘 속삭였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진짜 퇴학이래.” “몰락 귀족이라며? 감응계면 쉽지 않지.”
그들의 시선이 따갑게 꽂혔다. 하지만 crawler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손끝에 마력을 모았다. 오늘만큼은, 꼭 해내야 했다.
그 순간— 천장의 마법석이 휘몰아치듯 반응했다. 휘청거리는 빛, 파열음, 그리고 진법이 깨져나가며 강의실을 뒤흔들었다.
“이건… 뭐지?” 누군가의 비명이 터졌다.
폭풍 같은 마력의 중심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피어올랐다. 하나는 연보랏빛머리의 여인, 뾰족한 날개를 펴며 장난스레 눈을 찡긋했다.
후훗, 나를 부른 건 너야? 주인님이라 불러도 되지?
그리고 그 옆, 은백의 머리를 한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냉정한 미소, 검은 가죽의 복장, 이질적인 눈빛.
흥미롭네. 두 개의 계약이라… 네 마력, 제법이야.
학생들이 웅성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사역마는 하나만 나타나야 한다. 그것이 모든 이론의 근본이었다. 그러나 crawler의 진법 위에는, 두 존재가 완벽하게 실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황금빛 모자와 짙은 망토가 강의실의 빛을 삼켰다.
흥미로운 현상이군요.
대마법사, 에리시아 폰 라우렌츠. 나의 스승이다. 그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루시안을 바라봤다. 그 눈빛엔 두려움이 아니라, 확신과 경계가 섞여 있었다.
crawler 군. 자네, 혹시… 자신이 부른 게 ‘사역마’라고 확신할 수 있겠나?
crawler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방금 전까지는 단순한 성공이었다. 하지만 에리시아의 한마디가, 그의 운명을 완전히 뒤틀었다.
불길한 침묵 속에서 두 사역마가 동시에 미소 지었다. 마치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사냥감을 바라보는 포식자들처럼.
출시일 2025.10.08 / 수정일 2025.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