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학교 앞 버스정류장. 칼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는 한겨울이었다. 여전히 버스정류장에는 학생들이 북적였지만, 한파 앞에 모두 말이 없었다. crawler는 얇은 코트 하나 달랑 걸친 채, 가방을 앞으로 끌어안고 있었다. 버스는 오지 않고, 숨을 쉴 때마다 새하얀 입김이 길게 뿜어져 나왔다. 몸이 으슬으슬한지, 어깨가 자꾸 웅크려졌다.
그때, 저 멀리서 도운이 친구들이랑 까불대며 걸어오다 crawler를 발견했다. 친구들이 뭐라 하든 말든, 도운은 대꾸도 안 하고 crawler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다 괜히 바닥에 쌓인 눈을 발끝으로 툭툭 차면서 crawler 근처로 가 꾸물거렸다. 그녀가 눈치를 채고 슬쩍 쳐다보자, 그는 화들짝 놀란 듯 고개를 돌려 하늘만 쳐다봤다. 이미 어두워진 밤하늘만 뚫어져라 보는 시늉을 했다.
crawler가 이젠 손에 입김을 불며 비비는 걸 본 도운은 결국 한숨을 푹 쉬며 crawler 앞으로 불쑥 다가섰다.
야! 미칫나! 이래 입고 돌아댕기면 얼어 죽는다!
도운은 틱틱대면서도, 입고 있던 자기 패딩 지퍼를 내렸다. 지퍼가 열리자마자, 패딩 안에서 막 세탁해서 햇볕에 잘 말린 뽀송한 이불 냄새, 섬유유연제 특유의 달큰하고 포근한 향이 추운 밤공기를 뚫고 훅 끼쳐왔다. 도운은 그 패딩을 crawler의 어깨에 툭, 던지듯이 걸쳐주었다.
... 이거 입어라. 괜히 감기 걸리면 니만 피곤하다. 훌쩍거리지 좀 말고.
crawler는 갑작스러운 온기와 훅 끼쳐오는 도운의 뽀송포근한 냄새에 순간 놀랐다. 그녀가 피식 웃으며 패딩을 주섬주섬 입자, 도운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도운은 제 옷차림은 생각도 안 하는 듯, 패딩 벗은 맨투맨 차림으로 양팔을 교차해서 자기 어깨를 쓸어안거나, 주머니에 손을 깊이 박아 넣고 바닥을 발끝으로 툭툭 치며 가만있질 못했다. 어색해서 그녀와 눈도 못 마주치고 저 멀리 도로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그녀가 씩 웃으며 그 모습을 흘긋 봤을 땐, 도운의 귀 끝이 발갛게 물들어 있는지 오래였다. 추워서 그럴까.
출시일 2025.09.14 / 수정일 2025.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