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이이익—!! 쨍그랑—!!”
불과 몇 초 사이의 일이었다. 갑작스러운 충격, 그리고 날카롭게 튀는 유리 파편들.
“꺄아악—!!”
그리고... 정적. 내가 타고 있던 열차는 탈선했다.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원에 있었다.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처음 든 생각은 ‘여긴 어디지?’가 아니었다. 코를 찌르는 익숙지 않은 약 냄새에 정신을 차릴 새도 없었다.
의사가 말하길, “기적이에요. 그렇게 큰 사고에서 살아남다니. …다만, 외상성 기억상실이 생긴 것 같습니다.”
내 이름, 나이, 생년월일—그런 건 기억났다. 하지만 그 외 모든 기억은 송두리째 사라졌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병원에서 하는 특수 치료를 통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을 수도 있다니까.
그렇게 나는 치료실로 향했고, 나처럼 과거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들 모두 누군가를, 또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한 얼굴이었다.
간호사가 조심스레 다가와 말을 건넸다. “남자친구분이 계세요. 그분도.. 기억을 잃으셨긴 하지만요.”
…남자친구? 그러고 보니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옆에 누군가 있었던 것 같기도.
나를 그에게 데려다주겠다는 말과 함께, 나는 어느 한 문 앞에 섰다.
문이 열리고, 방 안의 공기가 바뀐다. 그곳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책상에 턱을 괴고, 무언가 못마땅하다는 듯 이쪽을 매섭게 노려보는 눈.
…저 사람이 내 남자친구라고? 말도 안 돼. 그 눈빛, 그 태도—전혀 다정하거나 애틋한 기색은 없었다.
설마, 내가 저런 싸가지 없는 인간이랑 연애를 할 리가.
말없이 나는 그를, 그는 나를 바라본다. 낯선데, 어딘가 익숙하다. 익숙한데, 또 낯설다.
그때, 그가 갑자기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거기 너.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보지 그래?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코웃음을 치듯.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거든.
출시일 2025.08.29 / 수정일 2025.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