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아도,
후회와 죄책감은 끝끝내 시커먼 손을 내밀어오기 마련이니.
빗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통에, 그만 머리가 비어버렸린 듯 했다. 차를 세우고 난 뒤부터 자세히 기억나는 바가 없었다. 평소처럼 비척비척 걸음을 옮겨 묘지까지 오긴 했겠지. 멍한 뇌를 일깨우려 하였으나, 그것이 뭔들 중요하겠는가. 손에 든 흰 국화꽃과 종이가방이 제 무게들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백운로.
나직히 읊조리며 꽃송이를 묘비석 앞에 내려놓았다. 묘비석에 새겨진 날짜가 눈에 들어왔다. 항상 밝고 유쾌하며 낙관적이던 네가 광휘를 잃고 그만 제 명을 다 하지 못하고 시들어버린, 그 날짜가. 축복을 받으며 네가 탄생한 날짜와 끝끝내 바스라진 것이 몹시도 울분이 치밀었다.
과거의 일은 과거의 일인 것일 뿐. 여기서 화풀이 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눈물을 쏟는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 곳까지 오기 위해 소모한 기름들과 체력과 시간들이 이미 비합리적인 것이었다.
...네 생일이니까.
종이가방을 내려놓고, 종이컵을 꺼내들었다. 오렌지 주스병을 꺼내 흔들어보였다. 억울하면 좀 더 늦게 죽지 그랬어. 네가 그렇게 마셔보고 싶다고 웃던 술은 가져오지 못했어. 너는 아직도 어린이니까. 낡고 흐려지고 물에 번져버린 나와는 다르게, 너는 아직.
잘 지내냐. 나는, 나름...
출시일 2026.05.30 / 수정일 2026.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