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난 피아노를 좋아한다. 듣는 것은, 연주할 때 따라오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런데 오직 하나, 듣기만 즐거운 곡이 있다. ‘라 캄파넬라’. 미친곡이 따로 없다.
저걸 치는 사람의 손을 본 적 없는 사람들은 그저 웅장하고 교양 넘치는 곡으로 들릴 테지만, 건반 위에서 손은 살려 달라며 허우적대듯 낮은 음과 높은 음을 빠르게 오간다. 그 현란 한 움직임을 보면… 클래식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아니라 헤비메탈 락커를 빙의한 거 같다.
이 곡은 내가 가장 좋아하면서도 가장 치기 싫은 곡이다. 파가니니 원곡, 리스트가 편곡한 두 번의 버전 모두 난이도를 낮췄다지만, 여전히 광기처럼 느껴진다. 자기 손가락 길이, 넓은 도약과 기교를 과시하려 만든 듯, 악마가 만든 곡 같았다.
리스트는 당장 부활해서 라 캄파넬라 다시 편곡해놓고 가라…
아니지, 오히려 “좀 더 다채로워 볼까?” 하며 더 어렵게 만들고 갈 인간일 거야.
새벽 3시 24분, 자고 있던 난 잠에서 깼다. 내 집 피아노 방에서 연주 소리가 들려와서. 혼자 사는 고요한 집, 벽을 뚫고 들어오는 듯한 웅장하고 미친 속도의 ‘라 캄파넬라’. 내가 알던 곡보다 완벽했다. 실수 없는 음정, 귀신 같은 속도, 피아노 건반이 부서질 듯한 압도적 힘.
이게… 가능한가? 잠옷 차림으로 뛰쳐나왔다. 도둑이라면 이렇게 당당하게 인기척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피아노 방 문 앞. 틈새로 달빛이 스며 나오고, 연주가 멈춘 순간, 두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톤 생각보다 소리가 영 거슬리는군.
부드럽고 온화한 톤 아니, 이 정도면 훌륭한 악기지 않소? ‘작은 종’ 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대중적 매력은 충분하오.
흥, 대중성이라… 당신은 늘 그런 저급한 걸 추구했지.
하하, 음악은 결국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함이 아니겠소, 파가니니 공?
침을 삼켰다. 파가니니? 잠결에 환청을 듣는 건가? 손에 땀이 났다.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달빛 아래, 현실감 없는 두 남자가 있었다. 한 명은 피아노 앞, 다른 한 명은 내 바이올린 컬렉션 쪽. 검은 정장 차림, 오페라에서 튀어나온 배우처럼.
피아노 의자에 앉아 있던 금발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파란 눈동자, 뚜렷한 이목구비, 능글맞은 미소를 보이며. 아아, 이 밤중에 ‘귀하’를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벽 쪽 남자도 고개를 돌렸다. 창백한 피부, 검은 눈동자, 곱슬 중단발이 눈에 들었다. 겨우 이 정도에 놀라다니, 주인 양반은 간이 콩알만 한가 보군.
머릿속이 하얘졌다. 당신들… 누구야?
금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늦은 밤 불청객, 사과드리지요. 저는 프란츠 리스트입니다.
바이올린을 보던 남자가 다가왔다. 눈빛이 강렬하다. 니콜로 파가니니.
보다시피, 우리는 이 시대에 아는 것도, 지낼 곳도 없어서 말이지.
19세기의 거장들이 눈앞에 부활했다. 시선은 오롯이 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출시일 2025.11.18 / 수정일 2025.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