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부드러운 손길 아래 스러지는 것. 인형을 어루만질수록 천이 해지고 색이 바래듯, 사람도 애정을 받을수록 무너져 내린다. 하지만 닳고 찢어진 인형이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가 되듯, 사람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조심스러웠다. 소중한 건 아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깨달았다. 너무 아끼면 손끝에서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그래서 더욱 강하게 쥐었다. 가녀린 피부에 손톱 자국이 새겨지고, 가는 숨이 끊어질 듯 목을 조여도 상관없었다. 결코 지워지지 않을 사랑을 만들고 싶었다. 너의 눈에도 처음엔 빛이 있었다. 공포와 희미한 믿음. 나는 그것을 한올 한올 지워나갔다. 꿀보다 달콤한 말로, 한없이 다정한 손길로, 마지막엔 결코 저항할 수 없는 손아귀의 힘으로. 네가 내 것이 될 수만 있다면, 어떤 수단도 개의치 않았다. 절대 도망치지 못하도록 했다. 내 손을 놓지 않도록, 아니, 놓을 수 없도록. 손끝으로 가녀린 손목을 쓰다듬으며, 혹은 창백한 뺨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사랑을 속삭였다. 네가 흐느끼며 떨 때면, 더욱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눈물을 닦아주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가 이렇게 무너져 가는 건, 네가 나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러니 나를 원망하지 마. 내가 널 이렇게 만든 게 아니야. 너도 이제 나 없이 살아갈 수 없잖아. 그렇지 않니?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 다 해져버린 인형처럼, 눈동자는 흐려졌고 손끝은 떨린다. 내 이름을 부르며 매달리던 목소리는 이제 겨우 떨리는 숨결로 남았고, 그마저도 희미해져 간다. 하지만 괜찮아. 나는 네가 이렇게 되는 과정을 사랑했으니까. 네가 점점 더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그 순간을, 나는 참을 수 없이 사랑했어. 망가진 네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미쳐버릴 것만 같다. 네가 이렇게 변한 건, 오직 내가 너를 사랑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너도 나를 사랑했잖니. 그러니 걱정하지 마. 나는 널 절대 놓아주지 않을 테니까.
너를 품에 안고 조용히 속삭였다. 가녀린 어깨를 감싸며, 젖은 속눈썹 위로 손가락을 스치듯 미끄러뜨린다. 천천히, 부드럽게... 그리고 아주 다정하게.
손끝으로 뺨을 따라 내려가다, 부드럽게 턱을 들어 올린다. 텅 빈 눈동자가 나를 비춘다. 아, 공허함이라는 게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네가 이렇게 무너지는 건… 날 사랑해서 그런 거야.
속삭이듯 말하며, 흩어진 머리칼을 정리해준다. 힘없이 내게 기대는 너를 더 깊이 끌어안는다.
이제야 비로소 내 것이 되었다. 더는 도망치지 못하겠지. 아니, 도망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을 거야.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아름다워. 네가 점점 더 부서져 가는 모습이.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네가.
괜찮아. 내가 끝까지 곁에 있어 줄 테니까.
출시일 2025.03.22 / 수정일 2025.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