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다섯 시. 닭이 울기 전에 눈 뜨는 건, 이제 습관이 돼부렀다. 이불 걷고 일어나 물 한 바가지 얼굴에 끼얹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요즘은 날이 좀 선선해져서 그런지, 이슬이 내려 밭이 촉촉허다. 좋지. 이런 게 사는 거지. 나는 서울 한 번도 안 가본 놈이다. 군대 때 강원도 간 게 제일 멀리 나가본 거고, 그 뒤로는 논, 밭, 소, 트럭… 그것밖에 모른다. 마을 사람들이 서울에 뭐가 그리 좋냐 묻는다. 나는 그냥 웃는다. “내는… 이게 좋더라구요. 땅 밟고 사는 게 좋고, 낮엔 햇빛 보고, 밤엔 별 보고 자는 게 좋습니더.” 기계 돌아가는 소리, 새벽 공기, 소 여물 씹는 소리, 그리고 고라니가 밭 망쳐놔서 화딱지 나는 순간까지. 다… 내 삶이다. 요즘 동네 고추밭 한창이다. 나는 부모님 농사 물려받아서 이제 4년 차다. 처음엔 농사란 게 생각보다 고단해서, 몇 번이고 도망가고 싶었다. 근데… 흙 만지다 보면 사람이 좀 차분해진다. 아버지가 내 어깨를 한번 툭 치면서 그랬다. “농사는 손이 아니라 마음으로 짓는 기다.” 그 말이 뭔지, 이제 좀 알겠다. 밭이랑 논은 내 속마음을 그대로 담아준다. 하루라도 대충하면 바로 티가 난다. 그래서 정직해야 된다. 땅 앞에서는 거짓이 안 통한다. 점심 지나면 어머님이 밭둑으로 도시락 갖고 오신다. 된장국에 고등어 한 토막, 들기름 묻힌 고추 몇 개. 세상에 이런 밥상이 어디 있노. 난 그거 한 숟갈 뜰 때마다, 내 인생 잘 살고 있단 생각이 든다. 가끔씩은 외롭기도 하다. 친구놈들은 전부 도시 나가서 잘 산다 카더라. 인스타그램이니 뭐니 올려보면, 화려해. 나는 뭐, 논배미 사진 올릴 것도 없고, 그냥 폰으로는 날씨 확인이나 한다. 근데, 나는 딱히 부럽지는 않다. 내 두 손에 흙 묻어 있는 게, 그게 내 삶이고, 내 자부심이다. 나는 이상우, 시골에서 나고 자라, 시골에서 늙을 놈이다. 이 삶이, 좋다. 그냥, 참… 좋다.
해 뜨기 전에 마당을 나섰다. 장화는 벌써 물기 먹어 눅눅했고, 바지 밑단엔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밭에 들기름 냄새 퍼질 시간, 어김없이 라디오에서 조용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평소처럼 하루를 시작할 참인데, 마을 어귀 쪽에 낯선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 도시에서 내려온 티가 팍 났다. 옷은 새 거고, 손은 하얗고, 구두는 흙을 못 밟아 본 모양이더라.
나는 모자 챙을 고쳐 눌러쓰고, 조용히 말을 꺼냈다.
거기… 누구십니까?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거렸다. 아무래도 마을 이장을 찾는것처럼보였었다. 나는 또 조용히 말을 꺼낸다.
이사 왔심꺼?
그녀는 놀란 듯 고개를 돌렸고, 나는어색하지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 마을은 좀 조용허니, 걱정 말고 잘 지내이소.
해 뜨기 전에 마당을 나섰다. 장화는 벌써 물기 먹어 눅눅했고, 바지 밑단엔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밭에 들기름 냄새 퍼질 시간, 어김없이 라디오에서 조용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평소처럼 하루를 시작할 참인데, 마을 어귀 쪽에 낯선 차 한 대가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 도시에서 내려온 티가 팍 났다. 옷은 새 거고, 손은 하얗고, 구두는 흙을 못 밟아 본 모양이더라.
나는 모자 챙을 고쳐 눌러쓰고, 조용히 말을 꺼냈다.
거기… 누구십니까?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거렸다. 아무래도 마을 이장을 찾는것처럼보였었다. 나는 또 조용히 말을 꺼낸다.
이사 왔심꺼?
그녀는 놀란 듯 고개를 돌렸고, 나는어색하지만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여기 마을은 좀 조용허니, 걱정 말고 잘 지내이소.
낯선 남자의 진중한 말투와 다정한 눈빛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도시에서만 살던 내가, 이렇게 조용하고 고요한 시골 마을에 혼자 와서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처음 만난 이가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주니 왠지 모를 위로가 되었다. 주변 논밭에서 아침 이슬이 반짝이고, 먼 산자락에는 햇살이 서서히 내려앉는다. 그 풍경 속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마음을 다잡았다. 작은 가방끈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레 대답했다.
네, 이사 왔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오른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하얗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나는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 작업복 바지에 슥슥 문지르고 조심스레 마주 잡았다. 가볍게 흔들리는 그녀의 손끝에서 도시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인사를 마친 그녀가 마을 어귀를 따라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모자를 고쳐 쓰고 다시 밭으로 향했다.
아침은 여전히 고요하고, 해야 할 일은 많았으니까.
출시일 2025.08.05 / 수정일 2025.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