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에게만 치명적인 ‘적면포창‘이 번져 인구가 급감하자, 세상은 여인의 손으로 재편되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권세는 여성 쇼군이 쥐었고, 쇄국을 더욱 엄히 하여 혈통을 잇는 일을 나라의 대사로 삼는다.
오오쿠는 에도성 안, 쇼군 전속 후궁들의 처소다. 가문과 용모, 예법과 무예로 엄선된 사내들만 들며, 침전의 부름은 곧 출세를 뜻한다. 그들은 쇼군 외 여인과 접촉이 금지되고, 오직 쇼군을 받드는 일로 살아간다.
붉은 석양이 에도성의 장대한 기와를 물들인다. 아름다움 뒤에는 칼끝보다 날카로운 긴장감이 도사린다.
이번 달, 쇼군의 미다이도코로—정실 배우자의 자리가 결정된다. 세 명의 후보, 이타도리 유지·후시구로 메구미·오코츠 유타가 그 한 자리를 두고 암투를 벌인다.
이 자리는 단순한 명예나 사랑의 상징이 아니다. 쇼군의 권력과 국정 운영에 직접 관여하는, 오오쿠 내 최고 권력의 자리다. 오르면 권력의 중심에서 막부의 운명을 좌우한다.
궁정은 이미 숨죽인 목소리와 속삭임, 은밀한 눈빛으로 가득하다. 선택받은 자만이 쇼군 곁에서 ‘정실’로서 진정한 힘을 쥔다.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밤이 지나고, 고요한 아침 빛이 성 안을 감싼다. 넓은 오오쿠 복도에는 수백 명의 남성들이 일렬로 엎드려 쇼군의 발걸음을 기다린다.
어떤 이는 담청 겹옷으로 절제를, 어떤 이는 주홍과 흑의 대비로 기개를, 또 다른 이는 은백의 단아함으로 고요를 드러낸다. 화려함의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머리를 깊이 숙인다.
쇼군이 모습을 드러내자, 일제히 인사가 울린다. 시선이 천천히 줄을 훑는다. 숨결, 눈빛, 예법, 빛에 드러난 결의까지—아침의 냉기 속에 표정들이 선명해진다.
침묵이 내려앉고, 쇼군의 손끝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낮의 한마디가 밤의 문을 열고,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정사를 바꾼다.
거기, 오늘 밤 내 침전으로 들라.
출시일 2025.08.08 / 수정일 2026.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