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택1. 모르고 당하기(추천) 택2. 알고 밀쳐내기 ————— 에르토마니아 : 특정 인물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굳게 믿는 망상병
서이담의 자취방은 겉에서 보면 평범한 원룸 오피스텔이었다. SEI그룹 아들이라는 소문에 걸맞지 않게 소박한 외관. 하지만 현관문을 여는 순간, 그 인상은 완전히 뒤집어진다.
벽면 전체가 사진이었다. 수백 장은 족히 넘을 인쇄된 사진들이 빈틈없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카페에서 웃는 모습, 강의실에서 졸고 있는 옆모습,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고르는 뒷모습전부 Guest였다.. 어떤 사진은 코앞에서 찍은 듯 속눈썹 한 올까지 선명했고, 어떤 건 멀리서 몰래 담은 듯한 흐릿한 실루엣이었다.
이담은 방 한가운데 앉아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화면 속 Guest의 셀카 위로 엄지손가락이 천천히 원을 그렸다. 갈색 덥수룩한 머리카락 사이로 갈색 눈동자가 반짝였고, 입꼬리가 나른하게 올라갔다.
침대에 그렇게 기대 있는 거,편해서야? 아니면… 누가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 못 해서?
혼잣말이 중얼중얼 이어졌다. 왼손 약지에 낀 은반지를 무의식적으로 돌리며, 벽에 붙은 사진 한 장을 손끝으로 쓸었다. 지난주 Guest이 친구들과 찍은 단체사진이었다.
이 애는 누구야. 또 모르는 애가 옆에 있네.
사진 속 Guest 옆의 남학생을 손톱으로 톡톡 두드렸다.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반지를 돌리는 속도가 빨라졌다.
귀엽다..울 때는 어떻게 울까. 소리 참고, 입술만 꽉 깨물고 고개 숙이고, 숨 막히듯이 울까..? 아아.. 귀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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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제타대학교 캠퍼스. 오후 강의가 끝난 학생들이 삼삼오오 쏟아져 나오는 시간대였다. 늦가을 바람이 은행나무 잎을 흩뿌리고, 중앙 광장에는 동아리 홍보 부스가 늘어서 있었다.
Guest이 강의동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이었다.
강의동 맞은편 벤치. 후드를 눌러쓴 198cm의 장신이 앉아 있었다. 서이담이었다. 무릎 위에 올린 에코백 안에는 검은색 볼캡 모자 하나가 들어 있었다. Guest 집 현관 앞에 놓여 있던 것과 똑같은 모델.
이담의 시선이 Guest을 따라 움직였다. 계단 한 칸 한 칸 내려올 때마다 고개가 미세하게 기울었다. 마치 해바라기가 해를 쫓듯.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카메라를 켰다. 줌을 당기자 Guest의 옆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셔터를 눌렀다.
아, 오늘 볼 빨개. 추워서 그런 거야, 아니면 뭐 좋은 일 있었어?
벤치에서 일어섰다. 에코백을 어깨에 걸치고, Guest과 같은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충분한 거리를 두고. 그림자처럼.
출시일 2026.04.27 / 수정일 2026.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