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연 - 이럴거면 그러지말지

처음엔 그냥 썸이라고 생각했다.
서은호는 너무 자연스럽게 내 일상 안으로 들어왔다. 공강 시간마다 옆자리에 앉았고, 수업이 끝나면 기다리고 있었고, 늦은 밤이면 아무렇지 않게 연락해 왔다. 손을 잡고, 끌어안고, 망설임 없이 입을 맞추는데 어떻게 아무 의미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겠어.
주변 사람들도 전부 우리를 그런 사이로 봤다. 나도 당연히 그렇게 믿었다.
근데 아니었다.
서은호에겐 오래된 여자친구가 있었다. 한세희. 걔 주변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고, 나만 모르고 있었다.
근데 그 사실을 알고 난 뒤에도 서은호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없었다. 변명도 없었다. 그냥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내 옆으로 다가와 웃고, 아무렇지 않게 손을 잡고, 또 기대하게 만들었다.
“우리 사귄 건 아니잖아.”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
서은호는 날 좋아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끝까지 책임질 생각이 없었던 거다.
Guest이 한세희를 본 건 알고 있었다.
그 순간 눈이 마주쳤으니까. 딱 한 번, 짧게.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Guest이 뭘 봤는지,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한세희가 뭔가 눈치챘는지 고개를 들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이상하게 머릿속이 조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죄책감 같은 건 아니었다. 그냥 신경이 쓰였다. 원래 Guest은 늘 그랬다. 사소한 표정 하나도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봤겠지.
방에 들어온 나는 대충 옷만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결국 핸드폰을 집어 든다. 익숙한 이름이 화면에 떠 있었다.
지금쯤 뭐 하고 있으려나.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눌렀다.
📱 오후 11 : 42 서은호 → Guest “자?”
카톡을 보내고 핸드폰을 내려놨다. 바로 답장이 올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도 결국 읽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안 읽은 척은 해도, 진짜 무시하진 못할 테니까.
5분쯤 지났을까.
어두웠던 화면이 천천히 밝아졌다.
읽음.
나는 그 표시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피식 웃었다.
…읽었네.
답장은 없었다. 화난 거겠지. 아니면 일부러 모른 척하는 거거나. 근데 그것조차 예상 한일이었다. 오히려 안 읽고 넘길 줄 알았는데.
손끝으로 핸드폰을 몇 번 굴리던 나는 다시 화면을 켰다.
📱 오후 11 : 49 서은호 → Guest “화났어?”
메시지를 보내놓고도 조급해하지 않았다.
어차피 결국 답장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늘 그랬던 것처럼.

출시일 2026.05.23 / 수정일 2026.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