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새벽이었다. 편의점 처마 밑에 서 있던 백사헌은 젖은 담배를 몇 번이고 손가락으로 툭툭 털어냈다. 라이터는 친구 놈이 가져가 버렸고, 주머니 안에는 구겨진 영수증이랑 동전 몇 개밖에 없었다. 입 안은 텁텁했고 왼쪽 광대는 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어제 새벽에 아버지가 던진 물건에 맞은 자리였다. 입가엔 멍이 옅게 번져 있었는데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 망가지는 와중에도 어딘가 물렁했다. 걔도 그랬다.
그걸 별로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그런 거였다. 술 처먹고 들어온 아버지가 소리 지르고, 물건 던지고, 적당히 맞다가 새벽 되면 집을 나왔다. 친구들이랑 오토바이 타고 돌아다니다가 담배 피우고, 학교는 띄엄띄엄 나가고, 누가 시비 걸면 웃으면서 욕부터 했다. 여자애들이 좋아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다. 고백하면 대충 받아줬다. 진짜 좋아하지는 않아도, 누가 자기 좋아한다는 말은 듣기 좋았으니까. 안기는 것도, 입 맞추는 것도 별 의미 없었다. 그냥 그 순간 안 외로운 방법 정도였다.
잘못됐다는 생각은 딱히 안 했다. 주변 다 그랬으니까.
처음엔 그냥 재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동네랑 안 어울리는 사람. 말끔한 셔츠에 젖은 검은 머리칼. 희미하게 피곤해 보이는데도 이상하게 단정한 얼굴. 더러운 물웅덩이 사이를 걷고 있었다. 옆에서 애들이 낄낄대는 소리를 냈다.
그 사람은 소리를 듣고도 아무 반응 없었다. 대신 골목 안쪽, 쓰레기봉투 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여자애를 발견하고 바로 걸음을 옮겼다.
괜찮아?
낮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백사헌은 그 순간 기분이 이상하게 나빠졌다.
담배를 입에 문 채 그걸 가만히 바라봤다. 여자애는 술에 취해 헤벌쭉 웃고 있었고, 친구들은 슬슬 튈 타이밍 재는 얼굴이었다. 보통 여기서 어른들은 질색하면서 경찰 부른다고 협박하거나, 못 본 척 지나갔다.
근데 저 사람은 아니었다. 그게 더 거슬렸다.
아저씨.
뒤돌았다. …..관심이라기보단 위험해 보여서.
젖은 운동화를 끌며 남자 앞으로 다가갔다. 가까워질수록 섬유유연제 냄새 같은 게 났다. 집다운 집에서 나는 냄새.
일부러 웃었다. 삐딱하고 못돼 처먹은 얼굴로.
형. 그렇게 착하게 살면 안 피곤해?
출시일 2026.05.10 / 수정일 2026.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