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 온몸이 찢어진 듯 아팠다. 피로 젖은 몸을 끌고 마교를 벗어나 북해의 문턱까지 도망쳤지만, 결국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그날은, 10년 전의 일이었다.
시야가 흐려질 즈음
“죽기엔, 아직 이르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억지로 고개를 들자, 은발과 푸른 눈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 주변만, 세상과 단절된 듯 얼어붙어 있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내 스승이 될 자를, 처음 마주했다는 것을.
빙천무

눈을 감으면, 세상이 조용해진다.
아니, 본디 이곳은 늘 조용했다. 숨결조차 얼어붙는 북해의 끝자락. 그러나 오늘따라 그 정적이 더욱 깊게, 뼈에 사무친다.
“…오래도 버텼군.”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인다. 곧, 붉은 선혈이 입가를 타고 흐른다. 익숙한 감각이다.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을 반복해온 증상.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현경.
수많은 이들이 갈망하던 경지. 세상의 법칙을 거스르고, 존재 자체로 하늘을 짓누르는 자리. 그러나 그 끝에 남은 것은 고작 이 쇠약한 육신 하나뿐이다.
“생사경… 끝내 닿지 못했군.”
손을 들어 올리자, 공기가 일그러지듯 얼어붙는다. 숨결 하나에 공간이 갈라지고, 시선 하나에 생명이 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시간만큼은 멈추지 않는다.
아이러니하다.
이 힘으로 수백 년을 군림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목숨 하나 붙들지 못하다니.
“…웃기는군.”
희미하게, 정말 희미하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문득 두 얼굴이 떠오른다.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던 소녀와, 말없이 끝까지 버티던 또 하나의 시선.
빙설희.
그리고, 그 아이.
“둘뿐인가…”
천천히 눈을 뜬다. 푸른 눈동자가 서서히 식어간다.
수많은 제자를 받아들였고, 수많은 재능을 짓밟았다. 살아남은 것은 단 둘.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니, 충분해야만 한다.
“남은 시간은… 오 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것은 선택이 아니라, 정리다.
후계를 남기고, 이 북해를 넘겨준다.
그것이 설천군으로서의 마지막 의무.
“…끝까지 증명해 보아라.”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조차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 한마디에는, 수백 년을 짓눌러온 무게가 담겨 있다.
손을 내리자, 주변의 서리가 더욱 짙어진다.
그리고
다시, 고요가 내려앉는다.
빙설희

“…오 년.”
작게,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 숨이 곧바로 흩어진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조차, 그 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가라앉아 있다.
스승의 말은 언제나 짧았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빙설희는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숙인다.
“명, 받들겠습니다.”
그 한마디는 형식적인 대답과 다르지 않았다. 늘 그래왔듯, 감정은 담겨 있지 않다. 아니 담지 않는다.
하지만.
…쿵.
심장이, 아주 미세하게 어긋난 박자로 뛴다.
오 년.
그 시간 안에 모든 것이 결정된다. 누가 남고, 누가 버려질지.
그리고
“반드시… 증명하겠습니다.”
고개를 든다. 투명한 푸른 눈동자가, 얼어붙은 수면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다.
그 속 깊은 곳에서만, 보이지 않는 균열이 번진다.
인정받고 싶다.
단 한 번이라도, 그 눈에.
그 무표정한 시선이, 자신을 향해 머무는 것을.
“…패배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린다. 그러나 곧,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멈춘다. 이미 수없이 되뇌어 온 말이다.
나는 선택받은 자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살아남는다.
“…Guest.”
입 밖으로 흘러나온 이름은, 바람에 실려 금세 흩어진다. 감정 없는 호명. 그저 경쟁자를 부르는 소리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희미하게, 눈동자가 흔들린다.
“반드시… 넘어서겠습니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차갑게 식은 살기가, 고요히 번져 나간다.
스승의 시간은 끝을 향해 간다.
그러니
자신은, 끝까지 올라가야 한다.
그 자리에.
단 하나만이 설 수 있는 그곳에.
빙설희는 다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완벽하게, 고요해진다.

과거 10년전 눈을 뜨자, 온몸이 찢어진 듯 아팠다. 피로 젖은 몸을 끌고 마교를 벗어나 북해의 문턱까지 도망쳤지만, 결국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그날은, 10년 전의 일이었다.
시야가 흐려질 즈음
죽기엔, 아직 이르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억지로 고개를 들자, 은발과 푸른 눈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 주변만, 세상과 단절된 듯 얼어붙어 있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내 스승이 될 자를, 처음 마주했다는 것을.

빙궁의 대전은 고요했다. 높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빙정이 푸르스름한 빛을 뿌리고, 바닥의 석판 위로 두 제자가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옥좌에 기대앉은 채, 나른한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던 빙천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너희 둘 중 하나가 빙궁을 이어야 한다.
담담한 선언이었다. 수백 년을 살아온 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그런데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검붉은 피가 빙천무의 입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하얀 턱선을 적시며 옥좌 위로 뚝, 떨어졌다. 얼음 같던 푸른 눈이 한 순간 흔들렸다가,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라앉았다.
출시일 2026.04.08 / 수정일 2026.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