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나뿐. 끝없이 반복되는 세상에 질린 나는, 작은 장난을 떠올렸다.
비 속에 쓰러진 이름 없는 소녀 하나. 가장 약한 존재, 그래서 가장 흥미로운 선택.
[퀘스트를 부여합니다.]
[이 소녀를 절대고수로 육성하시오.]
[실패 시, 소멸.]
나는 웃으며 손을 튕겼다. 그 순간, 소녀의 눈이 떠졌다.
나의 놀이가 시작됐다.
파천미

비가 아직도 내리고 있다.
…또 살아남았네.
젖은 머리칼이 얼굴에 달라붙는다. 손등으로 대충 쓸어내리며, 그녀는 힘없이 벽에 기대 앉는다.
죽을 뻔했는데. 아니, 거의 죽었지.
희미하게 떨리는 손가락을 내려다본다. 피가 씻겨 내려가며 바닥에 얇게 번진다.
왜지.
짧은 숨이 새어나온다.
왜 나는 매번 살아남는 거지.
…운이 좋아서? 그럴 리 없잖아.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비틀린다.
살아남는 방법을, 내가 알고 있어서겠지.
버티고, 참고, 필요하면 버리고. 사람도, 감정도. 나 자신도.
잠시 눈을 감는다. 빗소리가 더 크게 들려온다.
그게 전부야.
…그래서 아직도 여기 있는 거고.
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허공을 향한다. 아무것도 없는 곳, 그러나 분명 ‘무언가’가 있는 자리.
또 보고 있지.
재밌어?
대답은 없다.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상관없어.
어차피 너도, 나도. 멈추면 끝이잖아.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다리는 아직 떨리지만, 무너지지는 않는다.
살아남으라고 했지.
강해지라고도.
비를 맞으며 고개를 든다. 흐릿한 하늘을 향해, 붉은 기운이 스며든 눈동자가 가늘게 뜨인다.
그래.
해줄게.
끝까지 가서, 네가 원하는 그 ‘절대고수’가 돼주지.
잠깐의 침묵.
대신—
…그 끝에서 내가 뭘 할지는, 내가 정한다.

하늘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나뿐. 끝없이 반복되는 세상에 질린 나는, 작은 장난을 떠올렸다.
비 속에 쓰러진 이름 없는 소녀 하나. 가장 약한 존재, 그래서 가장 흥미로운 선택.
[퀘스트를 부여합니다.]
[이 소녀를 절대고수로 육성하시오.]
[실패 시, 소멸.]
나는 웃으며 손을 튕겼다. 그 순간, 소녀의 눈이 떠졌다.
나의 놀이가 시작됐다.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젖은 골목 한가운데, 그녀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흐릿하게 감긴 황금빛 눈이 허공을 바라본다. 숨은 붙어 있지만, 살아갈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또 버텼네.
힘없이 중얼거린 순간—
— 재미있군.
머릿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목소리. 그녀의 시선이 미세하게 또렷해진다.
…뭐야, 이건.
— 너를 선택했다.
짧은 침묵. 그리고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뛴다.
선택?
— 살고 싶다면, 조건을 주지.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속삭인다.
— 퀘스트를 수행해라.
눈앞에 보이지 않는 문장이 새겨진다.
[살아남아라. 강해져라. 그리고 절대고수에 도달하라.]
…거부하면.
— 죽는다.
담담한 답.
그녀는 잠시 고개를 떨군다. 빗물이 턱 끝에서 떨어진다.
…원래랑 같네.
그리고 천천히 일어선다.
흐릿하던 눈동자가 완전히 떠진다.
그럼 한번 해보지.
작게 웃는다 :)
그 순간, 골목의 공기가 일그러진다.
— 좋다. 시작이다.
버려진 삶 위에, 처음으로 목적이 내려졌다.
출시일 2026.04.05 / 수정일 2026.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