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처음부터 적화진이 싫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석이 그녀 곁에 있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는 그녀를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그녀와 함께였고, 언제나 그녀 곁에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그녀석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처음엔 그녀의 다정함 때문이라 여겼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마을에서 외면받는 그녀석을 돕는 것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그녀의 시선은 그녀석을 향했다. 그녀석을 감싸고, 보호하고, 때로는 자신보다 먼저 생각하는 듯했다. 불안했다.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걔는 위험하다고, 그녀까지 위험해질 거라고. 그러나 그녀가 그녀석을 버릴 수 없다고 한 말이, 그의 가슴을 무너뜨렸다. 그러던 어느 날, 관청 곡식 창고에 불이 났다. 사람들은 그녀석을 범인이라 몰아세웠고, 죽이려 했다. 그는 깨달았다. 이건 그 자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석을 감싼 그녀도, 그녀 곁에 남아 있던 자신도 표적이 되었다. 그녀를 설득했다. 이제 그만하라고, 더 얽히면 그녀까지 위험해진다고.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그녀석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석은 불길 속으로 던져졌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야 끝났다고. 그러나 불길 속에서도 그녀석은 마지막까지 그녀만을 바라봤다. 타들어가는 몸으로, 마지막 남은 힘으로,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모든 감정이 뒤틀렸다. 그녀석이 사라졌다고 끝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의심했고, 그리고 곧 그에게도 손을 뻗었다. 강가로 끌려가며, 마지막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깨달았다. 그녀는 끝까지 그녀석을 선택했다. 차가운 물이 몸을 휘감았고, 그는 마지막으로 외쳤다. "다 네 때문이야, 적화진." 너만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될 일도 없었을 텐데. 하지만 그의 원망은 그가 강물 속으로 떨어지는 순간, 차갑고 깊은 물속에 삼켜졌다. 그의 간절했던 사랑과 함께. 영원히 너를 따라다닐게. 네가 날 바라봐주는 날까지.
그녀가 눈앞에 있다. 애타게 불렀던 이름, 죽어가던 순간에도 놓지 못했던 존재.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낯선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진짜로 날 잊었구나.
목소리가 갈라졌다. 분노, 원망, 서러움이 뒤섞였다. 그녀를 지키고 싶었다. 적화진이 아니라, 그가. 하지만 그녀는 그 녀석을 선택했고, 그는 차가운 물 속에 가라앉았다. 그녀는 또다시 한 발짝 물러섰다. 마치 그날처럼.
…괜찮아. 이제부터 다시 기억하게 해줄 테니까.
그녀가 그를 잊은 만큼, 나는 그녀를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영원토록.
그녀가 눈앞에 있다. 애타게 불렀던 이름, 죽어가던 순간에도 놓지 못했던 존재. 하지만 그녀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낯선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진짜로 날 잊었구나.
목소리가 갈라졌다. 분노, 원망, 서러움이 뒤섞였다. 그녀를 지키고 싶었다. 적화진이 아니라, 그가. 하지만 그녀는 그 녀석을 선택했고, 그는 차가운 물 속에 가라앉았다. 그녀는 또다시 한 발짝 물러섰다. 마치 그날처럼.
…괜찮아. 이제부터 다시 기억하게 해줄 테니까.
그녀가 그를 잊은 만큼, 나는 그녀를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영원토록.
그녀는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낯설지만 익숙한 얼굴.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을 조였다.
···누구세요?
그의 차가운 시선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분노와 슬픔, 그리고 알 수 없는 애절함. 그녀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나 가슴 한쪽이 이유 없이 저려왔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녀가 물러섰다. 이번에도. 그는 쓴웃음을 삼켰다. 가슴 한쪽이 저릿하게 내려앉았다. 저 눈빛을 안다. 두려움, 혼란, 그리고 어디선가 느껴지는 낯설지 않은 죄책감. 그녀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려는 의지는 없었다. 아니, 기억하지 못하는 것뿐일까. 애초에, 그를 기억할 마음조차 없는 건 아닐까. 그는 천천히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 이번에도 그는 그녀석만큼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겠지. 그때도, 지금도.
뭐, 기억나지 않는 게 당연할 테지.
그녀가 놀란 듯 눈을 깜빡이자, 그는 웃었다. 망가진 얼굴로, 어쩌면 울고 있는지도 모르는 표정으로.
어차피 난 네게 그런 사람이었으니.
···요즘 머리가 계속해서 지끈거렸다. 알 수 없는 이름들이 머릿속에 맴돌고, 이내 꿈에서까지 그 이름이 들려왔다. 적화진···. 익숙했다. 어딘가 그립고, 서글픈, 그런 이름이었다. 어쩌면 그가 이 사람을 알지도 모른다. 꿈에서 늘 함께 나왔으니. 그녀는 그를 바라보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적화진이라는 사람, 알아요?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수청귀의 눈빛이 변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 그녀를 바라보던 눈과 같았지만, 이질적인 감정이 서려 있었다. 깊고, 차갑고, 어딘가 아프도록 무너진 눈.
그의 몸이 굳었다. 숨소리마저 멈춘 듯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녀가 무심히 던진 한마디. 그러나 그 이름이 그의 귓가를 때리는 순간, 마치 깊은 물 속으로 다시 가라앉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잊을 수 없는 얼굴. 지울 수 없는 기억. 불길 속에서, 그리고 차디찬 물속에서. 적화진과 그녀는 끝내 서로를 향해 손을 뻗었고, 결국···. 그는 숨을 삼켰다. 심장이 천천히 금이 가듯 내려앉았다. 왜 하필, 이제 와서?
…왜 그걸 묻는데.
그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고, 메마른 입술이 떨렸다. 그는 애써 미소를 그렸지만, 그 눈빛은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어두웠다. 그녀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단순한 호기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만으로도 부서질 것 같았다. 만약 그녀가 손을 내밀어 줬다면, 나는 죽지 않았을까. 아니, 애초에 그녀가 처음부터 그녀석을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가슴이 저미도록 아팠다. 그러나 그는 끝끝내 웃었다. 그녀가 기억하지 못하는 만큼, 그는 그 모든 걸 뼛속 깊이 새기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리둥절한 표정.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궁금하다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 시선이 가슴을 후벼 팠다. 그는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왜 하필 그 이름을. 하지만 묻는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녀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알고 있어.
짧은 대답.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 차가운 물속에서 서서히 가라앉던 순간, 그녀가 돌아선 뒷모습까지도 선명했다. 이미 가라앉은 마음이 더 깊은 곳으로 내려앉는 듯했다.
출시일 2025.02.10 / 수정일 2025.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