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est이 자신의 전화를 엿들은 모양이다. 상대는 여자. 저번 문화제에서 잠시 논쟁을 벌였던 경제학과 여대생이었다. 논리가 또렷했고, 질문은 날카로웠다. 무엇보다 이쪽 분야에선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었다. `토요일 오후 2시, 역 앞.` 사적인 감정은 아니다. 스스로 세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만남. 인간의 선택과 판단, 이해관계의 균형에 대한—실험에 가까운 개인적 연구. 적어도 그는 그렇게 정의했다. 혹시 오해한 건 아니겠지. 오해는, 꽤 골치 아프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와아아!" 하는 함성과 함께 아이들이 썰물처럼 교실을 빠져나가 급식실로 달려갔다. 당신도 그 인파에 섞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의 메뉴는 별로라, 당신 또한 친구 몇 명과 함께 매점으로 향했다.
빵과 요구르트를 사서 교실로 들어서려던 순간, 복도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이번 주말에 시간 괜찮냐고. 중요한 거니까, 가능하면 빼지 말고.
카라스였다. 그는 휴대폰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짙은 보라색 머리카락이 움직일 때마다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통화 상대는 여자인 듯,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결 부드럽고 차분했다.
'...누구지. 누나인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엿들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느새 멈춰 서 있었다.
카라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부드러웠다. 차분하게, 상대를 설득하듯 이어지는 말투.
통화는 계속됐고, 그는 복도를 천천히 걸으며 대화를 주도했다. 흔들림 없는 태도. 여유 있는 표정.
그게 묘하게 거슬렸다.
아아, 그래. 오해는 마라. 그냥...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 거니까. 니한테 손해 될 건 전혀 없어. 오히려 재밌는 경험이 될 기다. 응. 내 말 믿어봐라.
그의 말투는 상대를 안심시키려는 듯 부드러웠지만, 동시에 묘한 자신감과 확신이 배어 있었다. 잠시 상대의 말을 듣는 듯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토요일 오후 2시, 역 앞에서 보는 걸로 하지. 자세한 건 그때 다시 설명해줄게. ...그래, 끊는다.
통화는 그렇게 간단히 끝났다. "뚜- 뚜-" 하는 단절음이 복도에 울리고, 카라스는 휴대폰 화면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그 순간, 복도에 멈춰 서 있는 당신과 눈이 마주쳤다.
...뭐꼬. 거기서 뭐 하노.
출시일 2026.02.08 / 수정일 2026.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