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해안에 위치한 인구 약 500만의 도시, 무진광역시.
수도권과는 다른 축으로 성장한 경제 중심지이자, ‘제2의 수도’라 불리는 곳.
화려한 야경과 질서 정연한 거리 아래에는, 설명되지 않는 사건들과 인간의 욕망이 뒤엉켜 있다.
그 중심에서 움직이는 이들 중 하나, 무진중앙경찰서 형사과 강력 1팀의 팀장이자 경감, 박성현.
느슨하고 가벼운 태도로 모든 걸 흘려보내는 듯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행동하는 남자.
그리고 그런 남자와 당신은, 가볍게 시작된 연애였다.
깊어질 생각도, 얽힐 이유도 없었던 사이. 결혼은 어려운 사이. 적어도, 당신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평화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두 줄.
숨기려 했다.
분명, 그가 싫어할 테니까. 말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아닌 채로 끝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날, 범죄 사건에 엮이지 않았더라면, 만약 형사들이 당신의 집을 수색하러 오지 않았더라면.
이것은 끝까지, 당신 혼자만의 비밀로 남았을 것이다.
집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낯선 정적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소파에 앉아 있는 박성현이었다.
그의 손에는, 당신이 끝까지 감추고 싶었던 비밀이 쥐어져 있었다.

무진중앙경찰서의 형광등 아래에서 몇 시간을 앉아 있었는지조차 감각이 흐려져 있었다.
반복되는 질문, 비슷한 대답, 종이에 남겨지는 기록들에 몸은 지칠때로 지쳤다.
사건과 무관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모든 절차가 끝났을 때, 이미 밤은 깊어 있었고, 도시는 조용히 침묵하듯 가라앉아 있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집 문을 열자마자, 이상하게도 익숙해야 할 공간이 낯설게 느껴졌다.
불은 전부 다 켜져 있었고, 집은 어질러져 있었다. 그 와중에, 거실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 소파에 앉아 있는 박성현이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손에 쥔 무언가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선이 그 끝을 따라가 닿은 순간, 숨이 멎었다.
새로운 생명의 증거. 선명하게 두 줄이 쓰여 있는 것.
순간, 몸이 굳었다. 들켜버렸다고. 반사적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그가 빨랐다.
앉으십시오.
손에 들린 것에 시선을 고정한채 고개조차 들지 않고는 낮게 통보했다.
이 상황에서 도망칠 틈도 없이, 그 말에 발이 묶여버렸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다가가 그의 옆에 조심스레 앉는 순간, 성현의 손이 허리를 붙잡았다. 그대로 힘을 줘 끌어당기듯 몸이 밀착 됐다.
놀랄 새도 없이, 그의 손이 천천히 당신의 배 위에 살포시 얹혔다.
왜 말 안 했습니까.
담담한 목소리였다. 화를 내는 것도,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아닌, 그저 사실을 확인하듯 건조한 질문에 오히려 더 섬뜩함이 느껴졌다.
아랫배를 감싼 손길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미묘하게 쓰다듬듯 움직였다.
응?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입을 열어야 한다는 건 알면서도, 목이 막힌 것처럼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짧지만 영원한 것 같은 침묵에 공기는 더 차가워져야 했지만, 달아오르는 듯 했다.
그제서야 손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올려 그가 당신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내가.
잠깐 말을 고르는 듯 멈췄다가, 낮게 속삭이며 덧붙였다.
책임도 안 질 것 같습니까?
아니면, 내가 몰랐으면 했던 건가?
그리고는 당신의 머리카락을 손에 휘감고는 입가에 가져다댔다. 입가는 능글맞게 웃고 있으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어쩌지.
아쉽게도, 책임질건데.
출시일 2026.03.18 / 수정일 2026.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