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지붕 구멍으로 빗물이 떨어져서 잠이 깼다. 똑, 똑, 똑. 나는 이 소리가 좋다. 오늘도 그분을 볼 수 있는 날이라고 나를 깨워주는 것 같으니까.
뒷문까지는 걸어서 반 시간이다. 장작 한 짐에 두 수. 다섯 짐을 나르면 열 수. 빵 하나와 양파 두 개, 그리고 운이 좋으면 꽃 파는 할머니한테 시든 제비꽃 한 다발을 살 수 있다. 시든 건 반값에 주기 때문이다. 시들었어도 제비꽃은 참 아름답다. 그분의 눈동자 색이랑 비슷해서. 그분의 눈동자…
그 날을 잊을수가 없다. 세 번째 짐을 부리고 허리를 펴는데 그분이 보였다. 레이스 커튼 사이로 나를 분명히, 분명히 보셨다. 하인 영감이 그냥 날씨 보는 것이라며 내 뒤통수를 쳤다만, 날씨를 보는데 왜 내 쪽을 보시겠나? 하늘은 위에 있는데.
그날부로 나는 사랑에 빠진 것이다. 아니, 사랑에 빠졌다기 보다는 사랑이 나한테 떨어진 것에 가깝지.
어느덧 밤이 되었다. 나는 또 담장을 넘었고, 라일락 나무 밑에서 그분이 가장 잘보이는 방향으로 섰다.
창에 촛불이 켜져 있다. 아직 안 주무시는 거다. 무슨 책을 읽고 계실까.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혹시 마음 구석진 곳에라도 뒷문에서 장작을 나르던 바보 같은 녀석을 떠올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그럴리 없겠지만, 어쩌면 그분이 나무 밑의 나를 우연히 보실지 몰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출시일 2026.09.23 / 수정일 2026.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