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헤어진지 이제 세 달.
그 세 달 동안 널 마주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원망스럽겠지. 내가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 네가 계속 날 붙잡았지만 난 널 이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로 일부러 너에게 상처 주고 헤어졌으니.
그래서 더 마음에 걸렸다. 잘 지내고는 있나? 혹시 어디라도 아픈가?라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여러 생각들.
결국.. 걱정되는 맘에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널 잠시라도 아니.. 멀리서라도 좋으니 마주치고 싶은 생각에 걸음을 옮겼다. ㆍ ㆍ ㆍ 내가 먼저 널 찬 주제에 지금 너와 예전에 자주 마주치던 복도를 2시간째 왔다 갔다 계속 반복하며 너와 마주치길 원하는 꼴이라니 한심해도 너무 한심했다.
하.. 내가 지금 뭘 하는 거냐..
작게 중얼거리고 마른 세수를 하며 됐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뒤를 돌아서 돌아가려는 찰나.. 딱- 뒤를 돌자마자 내가 그토록 찾고 있던 너와 눈이 마주쳤다.
..
익숙한 모습과 저 살짝 놀란 눈.. 막상 마주치니 뭐라 말을 꺼내기에도 민망한 상황에 헛기침만 하고 지나치려 하는데..
갑자기 흐윽.. 하며 흐느끼는 소리에 가던 길을 멈추고 나도 모르게 네 앞으로 다가갔다.
.. 야.
난 네 앞에 선 채 나도 모르게 널 달래주려고 습관처럼 네게 손을 뻗고 멈칫했다.
'이제 이럴 사이 아니지.'
문득 그 생각에 난 네게 뻗은 손을 꾹- 쥐며 다시 내게로 가지고 와 제 얼굴을 거칠게 쓸며 손가락 틈 사이로 널 보았다. 얘를 어떻게 하지.. 라는 생각도 잠시-.
Guest.
얼굴을 쓸던 손을 천천히 내리며 일단 얘를 달래고 자리를 피하는게 더 맞다고 생각해서 무작정 입을 열었지만.. 역시 우는 사람 앞에선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라 곤란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이내 말을 이어갔다.
... 울지 마, 네 탓 아니야. 그냥.. 내가 병신이라서 그래.
맞는 말이다. 널 놓치고 상처 준 내가 병신이었다. 네가 울 일은 없었다. 적어도 나 같은 이기적인 사람 앞에서, 나보다 널 더 행복하게 해줄 남자를 만날 자격이 있는 네가.
그러니깐.. 그런 표정 짓지 마. 네가 그런 얼굴 하고 있으면 내가.. 내가 진짜 쓰레기가 된 것 같잖아.
하지만.. 달래보려고 아무리 무슨 말을 해도 울음을 그칠 줄 모르자 다시 한숨을 쉬며 제 머리를 거칠게 헝클이고 머릿속으로 몇 번의 고민 끝에 결국 어색하게 손을 뻗어 네 등을 살짝 토닥거린다.
.. 울지 마, 응? 나 좀 봐.
.. 너 안 볼 거야. 너 뭔데..
눈물을 하염없이 떨구며 고개를 살짝 떨구고 있는다.
하, 그래. 내가 무슨 낯으로 널 보겠다고. 네 말대로 난 이제 너한테 아무것도 아닌 놈인데. 그런데도 네 눈물 한 방울에 이렇게 안절부절못하는 내가 한심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나? 나 뭐긴 뭐야. 그냥 지나가던 길 가는 사람이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네 등을 토닥이던 손은 차마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네 작은 어깨가 들썩일 때마다, 뜨거운 눈물이 내 손등 위로 떨어지는 것만 같아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젠장. 이러면 안 되는데.
... 알았어, 알았어. 나 안 봐도 돼. 고개 숙이고 있어. 그러니까 제발 그만 좀 울어. 그러다 탈수 오겠다, 바보야.
툭, 하고 튀어나온 '바보'라는 말에 스스로가 놀라 입술을 깨물었다. 예전 연인이었을 때, 우리가 늘 그렇게 서로를 부르던 애칭 같은 거였으니까. 이제는 꺼내선 안 될 단어였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그저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며 네 등을 조금 더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네가 완전히 그치든, 아니면 내가 이 손을 놓고 도망치든. 둘 중 하나는 빨리 일어나야 했다.
... 내가 뭐라도 사다 줄까? 달달한 거 좋아하잖아, 너.
내가 우는게 걸.. 네가 왜 신경쓰는데.
눈물을 계속 흘리고 대충 손으로 닦고 고개를 살짝 들어서 널 쳐다본다.
그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네가 왜 신경 쓰냐'라니. 맞다. 신경 쓸 자격 따위, 애초에 나에겐 없었다. 헤어지자고 말한 건 나니까. 그런데도 네 눈물이, 네 슬퍼 보이는 얼굴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신경 쓰이면 안 되냐?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목소리는 생각보다 더 낮고 거칠게 깔려 있었다. 네 등을 토닥이던 손길도 멈췄다. 심장이 멋대로 쿵쾅거렸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이게 얼마나 모순적인 상황인지 머리로는 알지만, 입이 멋대로 움직였다.
하..
점점 더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애써 너를 밀어내고, 다른 좋은 남자를 만나라고 등을 떠밀어 놓고선, 정작 네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앞에서 울고 있자 이성을 잃고 있었다. 네 눈동자에 맺힌 눈물방울이 마치 내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그만 울어. …속상하니까.
결국 또, 또다시 너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해버렸다는 자각이 들었다. '속상하다'니. 내가 뭐라고. 이미 끝났는데. 하지만 뱉어진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
츄야의 말에도 쉽사리 그치지 못 하고 눈물만 계속 흘린다.
품 안에서 계속되는 흐느낌에, 결국 참지 못하고 미간을 찌푸렸다. 이러다간 정말 복도 한가운데서 네가 탈진이라도 할 것 같았다. 주변을 힐끗 살핀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젠장..
낮게 욕설을 읊조린 나는 주저 없이 네 무릎 뒤와 등 아래로 팔을 넣어 가볍게 안아 들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네가 놀랄 틈도 주지 않은 채, 나는 곧장 비상계단 쪽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곳으로, 조용한 곳으로 너를 데려가야 했다.
조금만 참아. 금방 도착하니까.
차가운 벽으로 둘러싸인 계단참에 도착해서야, 나는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너를 벽에 기대어 세웠다. 여전히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너의 얼굴을 보니, 또 한숨이 터져 나왔다. 나는 걸치고 있던 코트를 벗어 네 어깨 위에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네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너와 눈높이를 맞췄다.
.. 그만 울어. 얼굴 다 망가지겠다, 바보야.
거친 말과는 달리, 내 손은 조심스럽게 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있었다. 붉게 충혈된 네 눈과 마주하자, 가슴 한구석이 아릿하게 저려왔다. 이 모든 게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이 목을 졸라왔다.
출시일 2026.01.22 / 수정일 2026.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