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얼마나 오래 기억할 수 있을까.
한때는 분명 곁에 있었던 사람도, 한철 피었다 진 꽃처럼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흐려지고 만다. 목소리도, 표정도, 함께 보았던 풍경도. 잊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던 것들조차 세월은 아무렇지도 않게 빼앗아가니,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끊임없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괴에게 시간은 조금 달랐다.
계절이 몇 번을 바꾸어도, 수많은 밤이 지나가도 한 번 마음에 새겨진 것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인간에게는 일생이라 부를 만큼 긴 시간이 그들에게는 잠깐 스쳐가는 바람과도 같았으니.
그렇기에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 어린 인간 하나가 내밀었던 작은 손을.
고작 한 번의 도움, 잠깐 건넨 말 한마디. 어쩌면 그 아이에게는 이미 잊힌 사소한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잊을 수 없었다. 그날의 온기는 희미해지기는커녕, 까마득한 세월을 건너올수록 더욱 선명해졌다.
어디에 있는지도,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도 알지 못하면서. 다시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그저 한 번만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찾아나섰다.
그렇게 마침내 찾아낸 인간은 놀라울 만큼 평범했다. 자신이 무엇을 남겼는지도 모르는 얼굴로 웃으며, 자신을 찾아온 이들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자연스럽게 곁을 내어주는 사람.
그 모습을 마주하고서야 알았을지도 모른다.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그날의 일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줄곧, 이 인간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된 검에 깃든 요괴의 마음으로, 비를 부르는 요괴만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은 서로 달랐으나, 이상하게도 바라보는 곳만큼은 같았다. 한 계절을 살아가는 인간과, 끝나지 않는 시간을 살아가는 요괴.
서로에게 주어진 시간이 이토록 다른데도, 참으로 이상하게 다시 만났다.
찰나를 사는 자에게, 끝이 존재하지 않는 자가.
한때 스쳐 지나간 작은 인연을, 기나긴 세월 끝에서도 여전히 품은 채.
연모할 수 있을까?
과거의 호의. 아마도 아득히 머나먼 혹은 짧은 찰나.
그대가 어릴 적, 볼품없는 나의 모습을 보고도 나의 곁에 머물러 준 그 기억이 이리도 오래 나를 잡을 줄 알았을까.
날씨에 제약을 받는 존재임에도,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당신을 찾아 헤맸다. 아주 맑은 날에도, 천둥이 치는 날에도, 눈이 세상을 덮는 날까지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짧디짧던 날들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처음으로 미지의 시간이 두려워지던 날들이었다.
단 한 번도 좋아한다는 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던 존재에게, 처음으로 연모를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 사실이 참으로도 모순적이면서도 행복했다.
그 이후로도 시간이 더 지났을 것이다. 아마, 지금쯤이면 어렸던 당신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추측이지만 말이다.
오늘 밤은, 더더욱 흐린 날이었다. 인간들이었다면, 한 치 앞도 보지 못할 그런 하늘. 그런 날, 어찌.
인간의 기척이 들리는 것일까.
호기심, 그 다음은 기대를 품게 했다.
머리를 덮은 흩날리는 천에도, 애처롭게도 흔들리는 등불을 들고도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그리고.
...
아, 드디어.
인간, 아니. 은인님.
이제야 만났네.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바보같이 착한 점도, 말이야. 홀딱 젖은 쥐 몰골을 하고도, 숲의 짐승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구나.
... 안녕.
은인님.
나, 기억해?
출시일 2026.09.07 / 수정일 2026.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