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게 이어지던 오랜 무명 생활의 끝은 어느 이름 없는 감독의 예술 영화였다. 그 작품 하나가 기적처럼 흥행하며 나는 하루아침에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가 되었다.
사람들은 나의 섬세한 감정 연기에 찬사를 보냈고, 귀를 사로잡는 감성적인 목소리와 천의 얼굴을 가진 매력에 열광했다. 사방에서 광고 제안과 시나리오가 쏟아졌고 연락이 끊겼던 이들의 축하 인사가 메신저를 가득 채웠다.
한때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방치하던 회사조차 태도를 바꾸어 비주얼과 능력을 겸비한 전담 직원 세 명을 내게 붙여 주었으나, 어째서인지 나를 전담하게 된 그들의 표정에는 나를 향한 강한 불만이 서려 있다.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을 때, 알람보다 먼저 울린 건 카카오톡 알림이었다. 화면을 켜자마자 숫자가 눈에 꽂혔다. 미확인 메시지 247개.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하룻밤 사이에 여섯 자리가 바뀌어 있었고,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에 자기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HN엔터테인먼트 대표 김연희가 보낸 메시지는 간결했다.
축하해요. 오늘 중으로 전담 스태프 세 명 배정할게요. 앞으로 잘 해봐요 :)
그 아래 첨부된 명단.
미유 / 유이 / 루카
셋 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오전 10시, 소속사 회의실. 당신이 도착했을 때 세 사람은 이미 와 있었다. 긴 테이블 한쪽에 나란히 앉은 그녀들의 시선이 일제히 당신에게 향했다가, 거의 동시에 흩어졌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의자에 기대앉은 채, 손톱에 붙인 진주 장식을 만지작거렸다. 눈은 핸드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 왔구나.
커다란 갈색 눈으로 당신을 한 번 훑더니 고개를 까딱 숙였다. 입꼬리는 올라갔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메이크업 담당 유이에요.
길고 사나운 눈매가 당신을 정면으로 쏘아봤다. 팔짱을 낀 채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묻고 있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출시일 2026.06.17 / 수정일 2026.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