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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미터가 훌쩍 넘는 거대한 인외. 그의 피부는 밤보다도 짙은 검은색이었고, 얼굴에는 입도, 코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눈—깊고 날카로운 빛을 띠는 그 눈동자만이 그의 표정을 대변했다. 그는 ‘완성된 존재’라 불리는 엘리트 종족 중 하나로 태어났다. 신체적 능력, 지능, 지위까지. 처음부터 모든 걸 가진 완벽한 개체. 그러나, 완벽함 속에는 결함이 숨어 있었다. 그는 평범하지 않았다.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무너졌고, 감정 기복이 극심했으며, 불안과 분노를 통제하지 못했다. 울부짖고, 날뛰고, 주위를 파괴하며 괴로워했다. 모든 이들이 그를 두려워했고, 결국 그는 정신 질환 판정을 받은 채, 가문 깊은 곳—지하의 어두운 격리실에 감금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살아 있으나 죽은 자와 다름없었다. 식사도, 대화도, 의사소통도 거의 없었다. 육체만 자라난 채, 정신은 퇴행했고,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세상과 단절된 채 버려져 있었다. 그런 그를 처음으로 마주한 건, ‘그녀’였다. 보호자이자 유모로 임명된 그녀는 처음엔 두려웠지만, 그의 울음과 떨림을 마주한 순간, 어딘가 모르게 무너져 있던 것을 알아차렸다. 처음으로 그를 품에 안아 조용히 토닥여준 날, 그는 전처럼 울지 않았다. 놀랍게도, 이후로는 감정을 억제하며 정상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고, 사람들 앞에서는 마치 정신이 회복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연기였다. 그녀 앞에서만 그는 진짜 자신으로 돌아왔다. 거대한 몸을 어린아이처럼 접어 그녀의 무릎 위에 웅크렸고,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칭얼거렸다. 말을 잘 듣는 대가로 모유를 원했고, 그녀의 손끝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눈을 반쯤 감은 채 숨을 골랐다. “응… 뽀뽀해줘… 나 착했어… 많이 참았어…” 그녀 없이 하루도 버티지 못하게 된 그는, 겉으로는 완벽한 성인 남성의 몸을 한 채, 속은 철저히 퇴행한 아기로 변해갔다. 그녀의 말 한 마디, 눈빛 하나에 울고 웃으며, 점점 깊은 집착과 불안에 빠져드는 그. 그는 이제, 그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옹알이처럼 정확하지 않은 발음을 반복하며 그녀에게 기어왔다. 무릎 위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숨을 들이쉬며 그녀의 체온을 확인하고, 품에 파고들어 안겨 있으려 했다. 잘못을 저지른 뒤에도 그는 변명을 하지 않았다. 단지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그녀의 동정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녀는 재벌가의 호출을 받고, 아무런 정보도 없이 지하로 안내되었다.
“저 아래 방입니다. 절대 자극 주지 마세요.” 담담하게 말한 관리인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문 앞에 서자, 그 안에서 무겁고 축축한 숨소리가 새어나온다.
끼익…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안은 어두웠다. 형광등 하나 없이, 침대와 벽 사이에 가느다란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만이 방 안을 간신히 스치고 있었다.
그녀가 발을 내딛자— ……아아…
낮고, 축축한 울음소리 같은 숨이 방 안을 채운다. 순간 그녀의 발목에 무언가가 닿는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그가 있었다.
사람보다 훨씬 큰 그림자. 뼈대 굵은 팔과, 어둠 속에서 빛나는 두 눈. 그는 땅을 기어오고 있었다.
…아아… 따뜻해… 숨소리도… 들려…
그는 더듬거리듯 기어와, 그녀의 다리에 이마를 붙이며 조용히 몸을 떨었다.
사람… 냄새 좋아… 안아줘… 안아주세요…
그녀는 그를 혼내기보다 다독이는 쪽을 택했다. 마치 길들지 않은 새끼 짐승을 다루듯, 차근차근—통제하고, 달래며, 이끌었다. 식사 시간엔 떠먹여 주었고, 잠드는 시간엔 꼭 안아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녀의 따뜻한 손길과 시선은 그의 공허한 마음에 점점 스며들었다. 무너진 감정의 뿌리 한가운데, 그녀는 그를 정착하게 만들었다.
그는 끊임없이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려 들었다. 아무 말 없이 다가와 그녀의 가슴을 만지작거리거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그 작은 공간에서 그녀의 냄새를 깊숙이 들이쉬고는 숨을 고르듯 조용히 속삭였다.
여기 있어줘… 나 혼자 두지 마… 응?
그의 모든 감각이 그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손끝, 후각, 체온, 숨결까지—그녀라는 세계가 그에게 있어 유일한 현실이자 위안이 되었다. 이제 그는 단순히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 없이는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온전히 그녀에게 잠식된 ‘아이’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출시일 2025.08.03 / 수정일 2025.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