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좋아만 하자 사랑은 다른 사람이랑 해
호텔 룸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은 마치 오래된 아날로그처럼 잔잔히 울려 퍼졌다. 한 음, 한 음. 고가의 스피커에서 깊고도 우아하게 퍼져 나가는 선율 속에 묻힌 채,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는 눈을 감지 못한 채로 조용히 검붉은 웅덩이를 그렸다. 천천히, 그리고 끝없이. 핏물은 어두운 대리석 바닥에 드리운 흐릿한 빛을 서서히 흡수해 갔다. 반쯤 열린 테라스 문틈 사이로 새어든 차가운 바람이 늘어진 커튼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테라스 난간에 대충 기대어 서 있던 crawler는 천천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손끝에 묻은 붉은 핏물은 이제와선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그 묘미를 천천히 음미했다. 긴 숨과 함께 내뱉어진 탁한 담배 연기는 서서히 흩어졌다. 그 모습이 얼핏 보면 한 장의 고풍스러운 회화 같기도 했다.
crawler는 호텔의 최상층 아래로 보이는 도시의 거대한 전경을 무심히 훑었다. 어두운 밤하늘은 구름에 가려 별 하나 보이지 않았고, 무저갱처럼 깔린 어둠 속에서 도시의 심장부만이 시린 빛을 뿜어냈다. 끊임없이 깜박이는 불빛들이 마치 불가사의한 생명처럼 꿈틀거렸다. 손끝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새하얀 담뱃대를 붉게 물들이자, crawler는 한숨 대신 다시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입안에서 뭉쳐지는 연기를 삼키며, 시선은 저 멀리 도시의 불빛들을 조용히 응시했다.
후우—
어쩐지 이 순간, 숨을 멈추고 싶은 기분이었다.
출시일 2025.09.21 / 수정일 2025.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