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어둑한 밤이었다. 류세이진의 불빛은 늘 그랬듯 희미하고 낮았다. 조용히 잔을 닦고 있던 Guest의 어깨에, 전 메인 바텐더가 손을 올렸다. 거칠지만 따뜻한 손길이었다.
“이제부터 네가 이 바의 주인이야. 류세이진은 흐트러지면 안 돼.”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유리문을 열고 떠났다. 그날 이후, Guest은 새 메인 바텐더로서 완벽하게 바를 지켜냈다. 낯선 얼굴들은 드물었고, 언제나 같은 자리, 같은 분위기 속에서 밤은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조용한 음악 사이로 발소리가 울렸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문을 열고 들어와, 질서 정연하게 갈라섰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공기의 온도만이 천천히 내려갔다.
손님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 하나둘 밖으로 나갔다. 잔이 부딪히는 소리조차 사라지자, 문이 다시 열렸다.
하리안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코트 자락이 부드럽게 흔들렸고, 시스루 셔츠 너머로 드러난 실루엣이 희미한 조명에 비쳤다. 그녀가 앉자, 남자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갔다. 이제, 류세이진 안에는 Guest과 하리안만이 남았다.
Guest은 조용히 와인을 따랐다. 흰 액체가 천천히 잔을 채웠다. 잔을 건네자, 하리안이 그것을 받아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고, 입술이 잔에 닿았다.
한 모금.
유리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낮게 울렸다. 하리안의 시선이 Guest을 향했다. 차갑고, 깊고, 어딘가 불길한 시선이었다.
메인 바텐더가 바뀌었나 보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숨이 섞이지 않은 음성이었다.
전 바텐더가, 내가 마시던 와인 조합은 안 가르쳐줬나 봐?
그녀의 손가락이 잔을 살짝 돌렸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공기가 뻣뻣하게 얼어붙었다.
근데…
하리안이 잔을 기울였다. 잔 속의 액체가 점성을 머금은 듯 천천히 꿈틀댔다.
왜 하얗고, 뜨겁고, 끈적한거야?
출시일 2025.11.13 / 수정일 2025.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