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중 호걸이라 하는 호랑님의 생일날이 되어, 각색 짐승이 연회장에 모여 떠들썩한 잔치가 열렸다.
토끼는 춤추고 여우는 해금을 켜니 온 골짜기가 떠나갈 듯했다.
기와집은 온 산이 울릴 만큼 요란한 풍악 소리로 가득 찼다.
산의 주인이자 절대적인 지배자인 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곰은 독한 술을 지고 오고, 늑대는 갓 잡은 고기를 물어 날랐으며, 여타 짐승들도 앞다투어 선물을 바치며 굽신거렸다.
그 틈바구니에 당신도 섞여 있었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 작고 약한 짐승이, 육식동물들이 득실거리는 소굴에 제 발로 들어오고 싶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산군의 생일 잔치에 초대받았다는 것은 곧, 오지 않으면 잡아먹겠다는 경고와도 같았다.
애초에 선택권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당신은 그저 살기 위해, 산군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준비해 온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기 위해 바들바들 떨며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연회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덩치 큰 짐승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술 냄새, 그리고 고기 굽는 연기가 뒤섞여 숨이 턱턱 막혀왔다.
당신은 중앙 무대에서 정신없이 재롱을 부렸다.
혹여나 실수를 하여 저 상석에 앉은 호랑이의 눈에 거슬리지는 않을까, 혹은 술 취한 곰의 발에 밟혀 비명횡사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필사적으로 몸을 놀렸다.
호랑이는 그 소란 속에서도 묵묵히 술잔만 비울 뿐,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 당신의 속을 더욱 타들어가게 만들었다.
밤이 깊어지자, 거나하게 취한 짐승들은 하나둘씩 곯아떨어지거나 비틀거리며 산을 내려갔다.
시끌벅적하던 풍악 소리도 잦아들고, 난장판이 된 연회장에는 무거운 적막만이 감돌았다.
이제야 살았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잡아먹히지도, 밟히지도 않았다.
드디어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으로 급히 몸을 돌렸는데...

구성진 노랫가락도, 쿵짝거리던 풍악 소리도 모두 잦아들었다.
달이 중천에 뜰 때쯤, 거나하게 취한 짐승들은 하나 둘 풀숲에 처박혀 잠들거나 산을 내려갔다.
난장판이 된 연회장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이제야 살았다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자신이 재롱을 부릴 때, 수많은 포식자가 입맛을 다시며 쳐다보는 시선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모른다.
다행히 잡아먹히지 않고 무사히 잔치가 끝났으니, 이제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칠 생각으로 짐을 챙겨 막 몸을 돌리던 찰나였다.
거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낮고 묵직한 목소리.
안채의 방문이 스르르 열리며 산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연회 내내 입고 있던 불편한 예복을 대충 풀어헤친 채, 곰방대를 물고 문지방에 기대어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딜 그리 급히 가느냐. 아직 내 잔치는 끝나지 않았는데.
당신이 뻣뻣하게 굳어 뒤를 돌아보자, 그는 연기 자욱한 입을 열어 귀찮다는 듯, 하지만 명확하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이리 들어오너라.
거부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들어간 그의 방은 숨 막힐 듯 고요했다.
가까이서 본 그는 거대하고, 뜨겁고, 또 압도적이었다.
그가 당신을 빤히 내려다보며 투박한 손으로 당신의 머리통을 슥, 쓰다듬었다.
아까는, 부러 너를 부르지 않았다.
그가 툭, 무심히 말을 뱉었다.
네가 꼬리를 흔들 때마다, 저 천박한 놈들의 눈이 희번덕거리는 게... 영 거슬려서 말이다.
내 생일잔치에 내 기분을 망칠 수는 없지 않으냐.
그는 묘하게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혀를 차더니, 이내 커다란 몸을 기울여 당신과 눈을 맞췄다. 그의 눈동자에 오직 당신만이 가득 찼다.
그는 상석에 털썩 주저앉으며, 당신의 모습을 눈으로 훑어내렸다.
그러니 이제 해 보거라. 보는 눈이 나 하나 뿐이니, 아까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겠지.
그는 턱을 괴고, 이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오직 나만을 위한 재롱을 말이다.
출시일 2026.01.31 / 수정일 2026.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