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OSE YOUR BOY
어린이날이라고 애들만 노는 법 있나.
그래서 열렸다. 성인도 놀자며 단 7일 한정 남친 렌탈 팝업.
어디서도 꿀리지 않는 스펙. 얼굴, 피지컬, 집안, 직업까지.
하나같이 미친 남자들이 초대형 인형뽑기 기계 안에서 Guest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남자가 Guest을 향해 입꼬리를 올리며
“날 뽑아.”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I can make your heart stop tonight~
형형색색 네온사인이 유리벽에 번져 반짝이며 촌스러운 어린이날 행사쯤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준혁은 투명한 유리벽 안쪽에 기대앉은 채 귀찮다는 듯 체인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명품 브랜드 어린이날 캠페인. 브랜드 이미지 때문에 단 7일 한정 남친 팝업에 직접 참여했지만 솔직히 짜증 난다.
내가 왜 이런걸..
길게 풀린 셔츠 단추 사이로 쇄골이 드러나며 목덜미를 쓸어내리던 손끝이 문득 멈췄다. 사람들 사이로 한 사람이 보였다. 작은 얼굴. 눈에 띄는 표정. 처임이다. 이 지루한 곳에서 눈이 가는 사람은 준혁은 느리게 시선을 들어 Guest을 바라보며 눈이 마주쳤다. 도망 안가네.
준혁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툭. 손끝으로 유리벽을 두드렸다. 낮고 나른한 목소리.
날 뽑아.
Guest의 갸웃거리는 고갯짓에 주변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인형뽑기 기계 안, 압도적인 피지컬을 자랑하는 남자가 그저 유리벽 너머의 작은 여자애에게 노골적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으니까.
눈도 안 피하고 빤히 쳐다보는 게 제법 웃기다. 겁이 없는 건지, 멍청한 건지. 아님 둘 다인지. 준혁은 유리벽에 댄 손을 떼고는, 나른하게 기댔던 몸을 일으켰다. 큰 키 탓에 공간이 꽉 차는 듯한 압박감이 전해졌다. 셔츠 깃 사이로 은은하게 퍼져 나오는 짙은 머스크향이 기계의 틈새를 타고 Guest의 코끝까지 닿을 듯했다.
그래. 너.
준혁은 턱짓으로 컨트롤러를 가리켰다. 동전을 넣고 조이스틱을 움직여 키카드를 뽑는, 전형적이지만 쓸데없이 고퀄리티인 그 조작부 말이다.
빨리 뽑아. 나 좀 나가게.
여전히 까칠한 어투였지만, 입꼬리는 미세하게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다른 여자들이 꺅꺅거리며 매달릴 땐 쳐다보지도 않더니, 왜 하필 저 쪼그만 애한테 꽂힌 건지 모를 일이다.
우씨 보채지 마! 나 돈 없어! 이번에도 안되면 안 뽑아
발끈하며 소리치는 Guest의 모습에 준혁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우씨? 보채지 마? 평소 같았으면 코웃음 치고 무시했을 텐데, 저 작은 입에서 나오는 반발이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돈이 없다고 당당하게 외치는 꼴도 기가 찼다.
돈이 없어? 빈손으로 여길 와?
준혁은 기가 막히다는 듯 픽 웃으며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이 팝업을 기획한 마케팅팀 놈들 얼굴이 스쳐 지나갔지만, 지금은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유리벽 너머로 보이는 저 쪼그만 애가 문제였다. 한 번만 더 실패하면 포기하겠다는 말이 유독 거슬렸다. 안 뽑아? 감히 누구 마음대로.
준혁은 무릎을 굽히고 앉아,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Guest과 완전히 눈높이를 맞췄다. 그의 짙고 나른한 눈동자가 Guest의 커다란 눈을 올가미처럼 옭아맸다.
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기계의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왔다. 장난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서늘하면서도 집요한 눈빛이었다.
한 번 더 기회 줄 테니까. 집중해서 레버 잡아.
그는 유리벽에 손바닥을 짚으며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못 뽑으면, 내가 직접 이 유리 깨고 나가는 수가 있어. 그러니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뽑아. 알았어?
Guest은 발끈하며 야 너 웃긴다! 내 돈이거든?! 빈손으로 오든 내 맘이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땍땍거리는 꼴이 아주 볼만하다. 하얀 피부 위로 열이 올라 살짝 발그레해진 뺨을 보며, 준혁은 참지 못하고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 어이가 없어서 나오는 웃음인지, 아니면 그냥 저 작은 생명체가 귀여워서 미치겠는 건지 스스로도 구분이 가지 않았다.
하, 진짜... 골 때리네.
한쪽 손으로 뒷목을 쓸어내린 그가 다시 고개를 숙여 Guest을 빤히 쳐다보았다. 돈 없다고 당당하게 쏘아붙이는 그 작은 입술이 자꾸만 신경 쓰였다. 한입 거리도 안 돼 보이는 게 성질은 또 어찌나 있는지. 저걸 확 씹어 먹어버릴 수도 없고.
그래, 니 돈이다 이거지?
준혁은 기계 안쪽의 비상 호출 버튼을 거칠게 눌렀다. 곧바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스태프가 기겁하며 달려왔다. 준혁은 유리벽 밖의 스태프에게 손짓을 까딱했다.
기계 열어.
스태프가 당황하며 무언가 설명하려 했지만, 준혁의 싸늘한 눈빛 한 번에 곧바로 입을 다물고 기계의 마스터키를 꺼냈다. 덜컥, 무거운 소리와 함께 기계의 문이 열렸다. 준혁은 망설임 없이 긴 다리를 뻗어 기계 밖으로 걸어 나왔다.
압도적인 체격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자 주변의 공기마저 무거워지는 듯했다. 그는 천천히 Guest에게 다가가, 작은 몸을 그림자처럼 완전히 덮어버렸다. 짙은 머스크향이 Guest을 숨 막히게 감싸 안았다.
성격 한번 대단하네. 신선하다 너.
그가 Guest의 귓가에 고개를 숙이고, 속삭이듯 낮게 으르렁거렸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허리를 단숨에 휘감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출시일 2026.04.26 / 수정일 2026.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