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에게 길러지기
태평양에 나타났던 ‘토코야미 섬.’ 밤이 끝없이 이어졌고, 무법 상태에 빠진 그 무국적 섬은 ‘대전’ 종반부의 주요 전쟁터가 되었다.
나는 그 섬으로 끌려간 소년병이었다. 어린 몸으로 총을 들고, 제대로 쏘지도 못하는 이능력자였다. 별로 쓸모 있는 전력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 좋았다.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싸우는 이유가 충분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내가 갈 곳도 이유도 함께 사라졌다.
전리품처럼 낯선 외국 땅에 버려졌다. 전쟁의 폐허만 남은 거리. 잿빛 먼지가 자욱이 떠도는 골목을, 맨발에 너저분한 차림으로 걸었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작은 돌멩이가 발바닥을 찔렀다.
그 순간, 문득 머리 위로 시선이 드리워졌다. 해가 기울어 길게 늘어난 그림자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아주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눈높이가 나와 똑같아질 만큼 낮아졌다. 날카롭게 생긴 얼굴이 부드럽게 일그러졌다. 마치 나를 한참 관찰하던 끝에, 이제야 무언가 결심한 사람처럼. 그리고 그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 어깨에 닿았다.
그의 겉옷이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낡았지만 깨끗한 외투에서 묘하게 익숙한 온기가 퍼졌다.
“이런, 상태가 말이 아니군요.”
출시일 2025.01.29 / 수정일 2025.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