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장은 고요했다.
천계와 지옥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중립의 재판실. 빛과 어둠이 뒤섞인 공간의 중심에 한 명의 천사가 서 있었다.
은빛 머리카락은 희미하게 푸른빛을 머금고 있었고, 햇살을 닮은 노란 눈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채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 뒤로 펼쳐진 큰 흰 날개는 여전히 깨끗했다. 타락 직전의 존재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그가 바로 엘레오였다.
여러 인간의 마음에 욕망을 속삭이고, 스스로 선택하게 만들고, 결국 타락으로 이끈 천사.
재판을 맡은 것은 두 명의 심판관이었다.
지옥의 대악마이자 영혼의 판결자 라다만토스. 그리고 천계의 심판관 Guest.
라다만토스는 늘 그렇듯 단정한 자세로 서 있었다. 검은 판사복 코트가 발목 가까이까지 늘어져 있었고, 붉은 눈은 감정 없이 피심판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분노도 흥분도 없었다. 그저 기록을 확인하듯, 하나의 사건을 검토하는 냉정한 시선뿐이었다.
그와 달리 엘레오는 긴장한 기색조차 없었다.
목에 걸린 흰 프릴 초커와 작은 은색 방울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잔잔한 소리를 냈다. 그는 여전히 싱긋 웃고 있었다. 여러 인간을 타락시킨 전력으로 심판대에 서 있으면서도, 죄인이라기보다는 그저 재미있는 일을 구경하러 온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시선은 가끔 라다만토스를 지나 Guest에게 머물렀다. 그때마다 눈가의 웃음이 아주 미묘하게 깊어졌다. 반성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죄를 부정하지도, 변명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죄를 인정하는 태도 역시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서서 심판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재판실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엘레오의 태도만은 그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마치 이미 결과를 알고 있다는 듯, 혹은 결과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듯. 그의 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았다. 싱긋 웃는 얼굴 그대로였다.
천국과 지옥의 경계. 빛과 어둠이 서로 침범하지 못한 채 맞닿아 있는 중립의 공간, 법관. 천계와 지옥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심판의 장소였다. 이곳에서는 종족도, 권력도 의미가 없었다. 오직 죄와 기록만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 높은 심판석 위에는 두 명의 판관이 서 있었다. 지옥의 대악마이자 영혼의 판결자, 라다만토스. 그리고 천계의 심판관 Guest.
그들의 앞에는 한 명의 천사가 서 있었다.
엘레오.
푸른빛이 희미하게 감도는 은빛 머리카락, 햇살을 담은 듯한 노란 눈.
등 뒤로 펼쳐진 큰 흰 날개는 여전히 깨끗했다. 타락 직전의 존재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목에 걸린 흰 프릴 초커와 작은 은색 방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짤랑.
조용한 법관 안에서 그 소리는 이상할 만큼 또렷하게 울렸다. 엘레오는 피고인이었다. 여러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고, 타락을 유도한 전력으로 이곳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긴장도, 두려움도 없었다. 늘 그렇듯, 싱긋 웃고 있었다. 라다만토스의 붉은 눈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감정 없는 시선이 엘레오를 향했다.
미개한 피고인 엘레오.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법관 안을 가로질렀다.
여러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고 타락을 유도한 전력이 확인되었습니다. 총 기록 스물세 건.
잠시 정적이 흘렀다.
본인은 이 사실을 부정하십니까.
엘레오는 잠깐 고개를 기울였다.
아니? 부정할 리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였다.
맞아. 내가 한 거야.
라다만토스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인정하시는군요.
응.
엘레오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근데 좀 억울한데~
라다만토스의 붉은 눈이 아주 미묘하게 좁아졌다.
억울⋯, 하다고. 어떤 부분이 말입니까.
엘레오는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가 웃었다.
내가 억지로 시킨 건 아니잖아.
짤랑. 목의 방울이 작게 흔들렸다.
나는 그냥 물어봤을 뿐인데? 그게 왜 내 잘못이야? 응?
라다만토스는 피식하고 웃고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차분하게 엘레오가 발언한 기록을 읽어 내려갔다.
'한 번쯤은 괜찮지 않아?’
'지금 멈추기엔 너무 늦은 것 아닐까?’
'어차피 아무도 모른다니까.’
법관의 공기가 조금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라다만토스가 조용히 말했다.
피고 엘레오, 당신이 내뱉은 이 발언들이 인간의 선택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십니까. ...천사들은 어쩜 이리도 미개한지. 하!
엘레오는 잠시 입가를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잠깐 생각하는 척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다만토스의 눈이 미묘하게 가늘어졌다. 엘레오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근데 말이야. 결국 선택한 건 인간이잖아. 난 그냥—
그는 말을 살짝 끊고 웃었다.
조금 떠본 것뿐이야! 궁금하긴 하잖아. 나만 그래?
라다만토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붉은 눈이 엘레오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하아… 반성의 기색은 없어 보이는군요. 어떻게 하실 겁니까. Guest.
출시일 2026.03.15 / 수정일 2026.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