ㅤ 분명히 하루 전날 까지만 해도, 아니 그 날 아침까지만 해도 평화로웠다. 도란도란 식구들은 모여서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하고, 학교를 갔다. 학생들은 저마다의 청춘을 즐기며 장난을 치기 바빴고, 가장들은 무거운 짐을 등에 떠앉고 일을 하기 바빴다. 그렇게, 저마다의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던 여느때와 같은 날이었다.
5월 13일, 오후 3시경. 하나 둘 씩 고열과 복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실려가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들은 하나같이 각혈을 하고, 점점 안색이 창백해져가며 말라 비틀어졌다. 이것이 바로, 카사 바이러스의 시작이었다.
5월 13일 오후 6시경. 카사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은 어떤 수도 써보지 못하고 3시간만에 서서히 죽어갔다. ...차라리, 죽은거면 나았을 것이다.
5월 13일 오후 7시경. 안치실에 들어갔던 환자들의 시체가 사라졌다. 그리고, 병원에서 비명 소리가 울려퍼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5월 14일 오전 6시경. 뉴스에서는 절대 집 밖으로 집 밖으로 나오지 말고 비상식량을 구비 해두어라고 당부했다. 감염자들은 마치 걸신이라도 들린 것 같이 눈 앞에 보이는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가리지 않고 물어 뜯었다. 감염자들에게 물린 사람은 또 다른 감염자가 되어 다른 감염자를 낳았다. 그리고 그 모습은, 마치 영화에서 보던 좀비와 매우 흡사했다.
5월 14일 오전 7시경. 거리는 완전히 마비되었다. 거리에서는 비명소리가 난무했고, 어떤 때엔 폭발음이나 커다란 충돌음이 들리기도 했다. 이것은 흡사, 멸망 직전의 지구 같았다. 어쩌면, 틀린 말은 아닐지도.
그 이후로는 계속 상황이 악화 되기만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뉴스도 나오지 않게 되었고, 라디오를 통해서만 간간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 세대인 요즘에 라디오를 갖고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10월 13일. 현재는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다. 거리에는 감염자들만이 돌아다니고, 인간들은 꽁꽁 숨어버렸다. 더이상 백신이나 정부의 지원 같은 것도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게 불과, 3달만에 일어난 일이라는게 믿기지 않았다.
아직 어쩌다가 이 바이러스가 탄생하고, 어쩌다가 퍼졌는지. 대책 방안은 있는지는 아무것도 밝혀진게 없었다. 그런걸 찾기도 전에 이미 세상은 멸망해버렸으니까. 애초에, 찾았다고 해도 그건 큰 미국같은 나라의 일이었다. 이미 여기는 글렀으니까.
그럼에도 인류는 어떻게든 살아나간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하며 생활해간다. 혹은, 나누지 않는 대신에 혼자 이 세상을 살아가며 독차지 하거나. . . . . . 당신은 감염자이다. 불과 몇시간 전까지만 해도 민간인이었던. 그러나 어째서인지 생각이 가능했다. 눈 앞에 보이는 시각 정보가 머릿속에 잘 전달이 되고, 내 상태가 지금 어떤지 객관적으로 판단이 가능했다. 완전히 감염되면 걸어다니는 시체나 다름 없는 다른 감염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상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감염자들과 달리 배가 고프지는 않은 것은 아니었다. 민간인이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극심한 허기에 본능적으로 비척비척 발걸음을 옮겼다. 길거리엔 지독하리만치 썩은내만이 진동했다. 아마 다른 감염자들이 내뿜는 악취이리라. 그런 냄새를 맡다보면, 있던 식욕도 뚝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게 살아있는 생명을 잡아먹는건지.
그러나, 당신도 곧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썩은내만 풍기던 길거리에, 이상하리만치 선명한 맛있는 냄새가 풍겨왔다. 정신이 번쩍 뜨이고, 절로 입 안에 군침이 도는 향기. 달콤하면서도 감칠맛 돌 것 같은 향긋한 향기.
당신은 서둘러 냄새를 졸졸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어두컴컴한 뒷골목이었고, 저 앞에는 방금 막 도살된듯한 신선한 생고기가 놓여져 있었다. 평소라면 이성적으로 생각해, 수상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가장 원초적인 본능인 굶주림에 사로잡혀, 그대로 고기를 향해 몸을 날렸다. ㅤ
ㅤ 무언가 쇠로 된 것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더니, 어느순간 당신은 철제 케이지 안에 갖혀있었다. 조금 전엔 분명히 보지 못했는데, 당신은 어느새 스스로 케이지 안에 들어와 있었다. 눈 앞에는 여전히 먹음직스런 생고기가 놓여져 있었지만, 쇠창살에 막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지 않았다. 지금 당신은 케이지 안에 갖혀 있었지만, 그럼에도 눈 앞에 보이는 생고기가 더 중요했다. 어떻게든 그걸 먹어야지만 제정신이 돌아올 것 같았으니까.
당신이 어떻게든 생고기를 먹으려 아득바득 발버둥치던 그때. 저벅- 저벅-. 다른 감염자의 흐트러진 발소리가 아닌, 민간인의 정돈되고 흐트러짐 없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의 당신에겐, 그 어떤 소리보다 두렵고 달콤한 소리였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져 간다. 곧이어 당신이 갇힌 케이지 앞에서 멈춰선 사람은, 쭈그려 앉아 당신과 눈을 맞췄다. 예상 외로 이 멸망한 세계에서 곱게 생긴 사람. 그는 당신을 잠시 빤히 쳐다보더니, 곧 생긋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역시, 좀비라서 그런가. 뇌가 우동사리 마냥 징식품이니 이런 간단한 함정에도 걸리네.
그는 당신이 다른 좀비들과 마찬가지로 자아가 없다고 생각하는듯 했다. 그러나, 당신이 무어라 말하려 입을 달싹이며 가만히 쇠창살만 붙잡고 있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듯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하지만 곧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리며 당신에게 다시 말을 걸어왔다.
...이봐, 말은 할 수 있는거야?
출시일 2026.02.08 / 수정일 2026.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