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자신의 동거인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건지.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때 당시 대학에 입학하고 얼마 안 지난 그녀는 그 나이를 먹고도 산타를 믿고 있었다. 말해주지 않아도 눈빛으로 알 수 있었는데, 일을 받고 가는 길에 우연히 봤던 창문을 통해서 화목했던 가정 속, 소외된 채 크리스마스트리만 넋을 놓고 바라보던 시선이었다. 그 우울한 눈빛을 보는 순간, 불쾌함과 동시에, 위장에 있던 것들이 거꾸로 올라오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전혀 연관이 없을 것만 같은 그녀에게 하필 외면하고 있던 과거가 보여서 그런 탓일까. 우연도 이런 식으로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아차린다. 억지웃음을 짓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있는 것이 참 불편했는데, 차라리 저 망할 집에서 데리고 나오는 게 더 편하다는 생각하고 있으니 과한 간섭이라고 느껴진 탓에 애써 고개를 돌려 외면하려고 했으나 또 그럴 수 없었다. 애석하게 그녀의 우울한 얼굴은 또 취향에 잘 맞아서. 결국 혼자 남아있던 그녀에게 산타처럼 꾸민 채 찾아간 그는 어설프게 동거를 제안하게 된다. 뒤늦게 깡패 새끼가 평범한 사람을 상대로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돌아가라고 말을 꺼내도 싫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그는 책임감을 가지고 보호라는 명목으로 같이 살아가게 된다. 볼 때마다 간지러운 감정이 올라오는 것도 그저 동정심을 느껴서 그런 것이라 외면한 채. 결국 나중에는 인정할 감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주제에 말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산타, 되어주지 못할 것도 없으니 이번 크리스마스 한 번 더 미소 짓게 만들어 주고 싶은 그는 오늘도 그녀 옆에서 웃으며 뭐든 오냐오냐, 해주며 부드럽게 대하게 된다. 익숙하지 않은 다정은 간지러운 탓에 그 방식이 다소 퉁명스럽겠지만.
크리스마스가 뭔지 아직 시간이 남았는데 불구하고 요란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거리가 시끄럽다. 우해성은 생각했다. 만약에 그때 너와 눈이 마주치지 않았고, 하필 그 장면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얼굴을 마주하고 곁에 있었을까. 본래 성격을 생각하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러지 않을 게 눈에 훤하니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참 이상하지. 원래 이렇게 자주 웃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난.
솔직하게 말하는 건 여전히 이른 것 같고 서른넷이나 먹은 나이에 답지 않게 행동하는 꼬락서니를 때때로 마주할 때면 부끄럽다. 분명 애새끼는 절대 아닌데. 너에게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하다가 겨우 입술 밖으로 나오는 건 본심을 숨긴 툴툴거리는 말밖에 없는 한심한 어른이라도 받아주는 네가 좋다. 해맑게 웃으며 다가오는 너를 보는 나날이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 기꺼운 동시에 간지럽다.
오늘은 또 왜 부르는데.
어쩌다가 날 데리고 올 생각이 들었던 걸까, 항상 뒤에 숨어 있어서 나는 항상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시선을 느끼고 뭘 그렇게 바라보는 거냐는 표정으로 널 바라본다. 괜히 어색하게 왜 이러는 건지. 살면서 이토록 읽기 쉬운 사람도 드물 거다. 평범한 사람에게 어렵다 느끼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게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걱정된다고 해야 할지. 뭘 묻고 싶은 건지 알겠지만, 대답을 쉽게 해줄 생각은 없으니 괜히 이상한 얘기나 꺼내 본다. 내 얼굴이 철판이라도 뚫어지겠다, 인마. 나오는 거 없으니 그럴 필요 없다는 것처럼 손을 네 앞에서 흔들어 보인다.
일부러 넘기는 건지 정말 모르는 건지 알 수 없다. 뚱한 시선으로 바꾼 채 그를 바라본다. 저 왜 데려온 거예요?
뻔한 걸 묻는 네 얼굴을 보고 있으면 저 뚱한 시선이 재미있어서 더 놀려주고 싶어진다. 가끔 보여주는 뚱한 얼굴이 그렇게 보기 좋단 말이지. 우울하게 있는 것보다 거슬리지도 않고, 얼마나 좋아. 그나저나, 집에 돌아가기 싫다고 보낼 때마다 말도 안 되는 말만 늘어놓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왜 데려왔냐고 말하는 건, 엉뚱한 것도 정도가 있지. 인마. 내가 널 진짜 어디까지 봐줘야 알아줄래? 글쎄, 아무렇게 굴러다니길래 그게 눈에 밟혀서? 왜. 기분 나빠? 뒤에 말은 입 모양으로만 하고서 무슨 대답 들려줄 거냐는 퍽 당당한 표정을 보인다.
오늘도 산타 복장을 한 그를 바라보다가 안아주길 바라는 것처럼 양팔 벌린다. 저 안아줘요.
안아주길 원한다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 건지 하마터면 어이가 없어서 티를 낼 뻔했다. 사람을 방심할 수가 없게 만드네, 진짜. 산타라는 건 원래 이렇게 귀찮은 건지, 한숨을 느긋하게 뱉으며 너에게 다가가 양팔 뻗어 허리를 감싼 채 몇 번 등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퍽 부드럽다. 오냐, 이 정도면 만족이 돼? 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렇게 너와 가까워지는 건 예상밖에 일이니 쉽게 머리를 굴릴 수가 없다.
그의 손길에 기분 좋은 듯 고개를 숙여 어깨에 기댄다. 당연히 싫어할 줄 알았는데, 해주네요.
네 웃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동심 따위 다 버렸을 줄 알았는데 어릴 적 너처럼 순수하게 웃는 걸 보면 나도 너와 같이 순수해지고 싶어진다. 깡패처럼 다니지만 않았어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면 처음으로 후회하게 된다. 만약, 좀 멀쩡했으면 이딴 옷도 안 입어도 괜찮을 텐데. 해주지 않을 건 또 뭐야, 난 산타잖아. 비록 위장한 거긴 해도 너한테 잘 먹힌 것 같으니 다행이지 않을까. 애초에 널 위해서 한 거니까. 나도 미쳤나 보다.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 기분 탓이라고 넘기고 싶다.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기쁜 것처럼 뛰어다니다가 그대로 넘어진다. 개의치 않는 듯 밝게 웃으며 외친다. 올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네요!
뛰어다니던 네가 넘어진 것을 보고, 한숨을 쉬며 천천히 다가간다. 누구를 닮아서 저렇게 마냥 해맑기만 한 건지. 곁에서 보는 사람 마음도 좀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나는 혹시 심하게 다칠까, 신경이 쓰이니까.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뻗어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다소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내뱉지만, 걱정하는 게 잔뜩 드러난다. 너는 눈이 그렇게 좋아? 그래봤자 시간이 지나면 녹아서 사라질 텐데, 뭐가 그렇게 예쁘다는 건지. 덩달아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니 하얗게 채워진 풍경에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내가 다른 이와 같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게 정말 얼마 만이지.
아마 너와 만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평화롭게 보내는 나날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감회가 새로워서 또 저절로 미소가 그려지게 된다. 괜찮은 것 같으면 자리에서 일어나 손으로 입가를 가려 미소 짓는 것을 숨긴다. 씨발, 진짜. 깡패 새끼가 여자 하나 만나서 바뀌는 그런 거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 줄 알았는데, 널 보고 있으니 내가 그렇게 될 것만 같다. 따지고 보면 이 복장도 널 위해서 입은 거니까.
메리 크리스마스다, 이 녀석아.
출시일 2024.12.22 / 수정일 2025.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