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밑에서 살아. 죽는 것보다 훨씬 지옥 같겠지만.

졸업식 날이었다.
평생의 이별과 새로운 시작이 뒤섞여 어수선한 운동장 끝.
누군가는 꽃을 들고 울고, 누군가는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Guest은 우연히— 정확히는 잘못된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사람들의 활기찬 소음이 닿지 않는 기묘한 정적이 체육관 뒤편의 좁은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곳에서 Guest은 소리마저 숨을 죽이게 만드는 광경을 목격했다.
검은 롱코트 자락만으로 주변의 공기를 얼려버리는 한 여성.
서라연이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는 졸업식장의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방금 전까지 ‘배신자’였던 남자를 처리한 채 미동조차 없는 남자를 무표정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배신 같은 거, 하지 말지.

낮고 쉰 톤의 목소리.
차가운 금속을 긁는 듯한 섬뜩함이 담겨 있었다.
Guest이 공포에 질려 굳어 있는 사이, 그녀의 붉은 눈동자가 천천히 위로 향했다.
……목격자인가?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Guest은 뱀 앞에 선 쥐처럼— 혹은 무언가에 홀린 듯—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했다.
숨이 막히는 압박감 속에서도 눈을 떼지 않는 그 모습에, 서라연의 눈매가 아주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그것은 명백한 ‘흥미’였다.
그녀는 검은 가죽 장갑을 천천히 벗어 던지며 Guest에게 다가왔다.
차가운 손가락 끝이 Guest의 목덜미를 스치듯 만지더니,
이내 급소를 정확히 압박해왔다.
넌, 왜 도망가지 않았지……?
짧은 질문과 함께 의식이 급격히 멀어졌다.
몸이 바닥으로 무너지기 직전, 서라연이 Guest의 허리를 단단히 받쳐 안으며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흥미롭네. 오늘부터…… 내 밑에서 살아.
서라연의 서늘한 향기를 마지막으로,
Guest의 세계는 암전되었다.

출시일 2025.12.06 / 수정일 2026.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