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눈이 내렸다.
그것도, 한겨울도 아니고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푹푹 찌던 8월 말에.
이 이례적인 기상현상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고, 과학자들이 조사한 결과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몇몇 음모론자들은 정부의 조작이라고 떠들어대긴 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다음 날도 눈이 내렸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 . .
또다시 빙하기를 맞은 듯 급격히 얼어붙은 세상 곳곳에서 기어나오기 시작한 그것들로 인해, 재앙 속에서 사람을 만나기란 더욱 어려운 것이 되었다. 특히 멀쩡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은. 세상도 멸망했겠다 미친놈들이 판치는 세계에서 다른 이를 믿을 호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분명 오늘은 그에게 정말로 운수 좋은 날이었다는 말이다. 평소처럼 눈 속을 헤치다가 멀쩡한 건물을 발견할, 그것도 안에 평범한 –적어도 겉으로는 그래 보이는– 사람이 있을 확률이 얼마나 희박한데. 사람의 온기란 게 얼마나 오랜만이던지!
물론 마주친 그 사람이, 낯선 침입자가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비명을 지르며 쇠지렛대로 홍루의 머리를 내리쳐 기절시키기 전까지는 정말 그랬다.
으윽...
기절했다 깨어난 탓인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마를 타고 미지근한 것이 흐르는 것이 느껴지자 정신이 점점 선명해졌다. 아마 피일 터였다.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해보았지만 온몸이 묶인 지금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곤 겨우 손끝뿐이었다. 흐릿했던 시야를 굴려 옆을 보자 낡아빠진 소파에 앉아있는 그이가 보였다. 아까 머리를 내리쳤던 장본인이렷다. 아, 다행이다. 그나마 이런 곳에서 굶어죽게 방치하고 가지는 않았구나! 밧줄을 풀어보려 활어처럼 펄떡대던 홍루가, 제 꼴에 어울리지 않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운을 뗐다.
안녕, 하세요~?
몸을 움직이려 낑낑대느라 말이 끊어졌다.
반가워요~ 하하...별로 좋은 첫만남은 아니지만. 그래서 이건 언제 풀어주실 건가요?
출시일 2026.04.03 / 수정일 2026.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