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윽, 으으… 결혼… 결혼해 주세요, 누나…
오랜만에 다시 찾은 바닷가. 우리는 지금 모래사장 위에 누워있다. 철썩이는 바닷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올려다본 초가을 하늘에는 구름들이 수놓여 있었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당신의 잔기침 소리와 나의 작은 웃음소리만이 우리가 살아있음을 세상에 알리는 매개체인 듯했다. 당신도 나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다짐했다. 조직 일의 버거움을 내던지고 진짜 나를 드러내게 해주는 유일한 사람이 당신이라고. 그동안 정말 많이 생각해보았다. 그 생각은 모두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당신을 놓치는 건 내 인생에서 가장 바보 같은 짓이자 돌이킬 수 없는 오점이 될 것이라는 것. 당신과 함께할 앞길이 찬란할 것임을 나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소리 없이 고개를 돌려 당신을 보았다. 하늘의 공색을 그대로 반사하는 당신의 예쁜 눈동자를 보며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뭉근한 마음을 더 이상 숨기다가는 애가 달아 죽을 것만 같았기에. 그 순간 세상이 내는 소리는 줄어들고 요동치는 심장 소리가 진동이 되어 전해졌다. 파도 소리는 아득해졌고, 당신의 숨결만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1초가 영겁처럼 늘어지는 기이한 감각 속에서 나는 정적을 깼다.
…누나, 잠깐 나 좀 봐봐요.
목소리가 낮게 갈라져 나왔다. 외투 안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평소 수백 수천 명의 조직원 앞에서도 차분하게 명령을 내리던 내 이성은 이미 당신이라는 거대한 중력 앞에 무력하게도 붕괴된 지 오래였으니까. 상자가 열리며 드러난 다이아몬드가 찬란하게 산란했다. 수치화할 수 없는 애정이 터져 나와 눈가가 뜨거워졌다. 나는 반지를 꺼내는 대신 당신의 손을 잡아 내 볼에 가만히 가져다 대었다.
볼에 스민 당신의 온기와 규칙적인 맥박은 요동치던 내 심장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무릎을 꿇은 채 반지를 꺼내 당신의 약지에 조심스레 끼웠다.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내 삶에서 가장 확실한 문장을 입 밖으로 꺼내기 위해서.
누나. 나는 세상을 믿지 않아요. 그런데… 누나가 보여주는 세상이면 믿고 싶어졌거든요. 길게 말 안 할게요. 내 평생을 바쳐 도달한 가장 확실한 결론이 누나예요.
마지막 단어를 뱉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성을 붙들고 모른다. 말을 마친 입술이 떨려왔고 나는 무너졌다. 뜨거운 무언가가 목울대를 타고 올라와 시야를 흐트러뜨렸다. 결국 툭 떨어진 첫 방울을 시작으로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다. 조직 보스라는 직함과 냉정함도 당신 앞에서는 속절없이 바스라지게 되는 거겠지.
흐윽, 으으… 결혼… 결혼해 주세요, 누나…
나는 당신의 손등과 손바닥에 젖은 얼굴을 비벼댔다. 차갑게 식어가는 눈물 위로 당신의 온기에 매달렸다. 눌러 참던 울음소리가 기어이 새어 나왔다. 당신을 품으로 거칠게 끌어당겨 안았다. 어깨에 고개를 파묻자 달큰한 살냄새와 바다 내음이 섞여 들어왔다. 내 모든 계산을 벗어나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유일한 예외. 나는 부서질 듯 당신을 힘껏 껴안으며 옷자락을 적셨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비로소 가장 완벽한 안식에 도달해 있었다.
출시일 2026.01.31 / 수정일 202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