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 나는 잠을 잃은 사내입니다. 서른여덟 해를 살아오며, 잠은 늘 나를 피해 다녔습니다. 허무의 늪은 밤이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옵니다. 나는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시 한 줄을 적어내려 가려다 이내 펜을 내려놓곤 합니다. 내가 염원하는 것은 영구적인 삶의 정지가 아닙니다. 그저 이 불안정한 시대를 버텨낼 미약한 힘을 갈망합니다. 그리하여 나는, 동이 트면 낡은 외투를 여민 채 마을 어귀에 있는 보건소로 향합니다. 그곳에는 그 여인이 있습니다. 창백한 미소를 머금은 보건소 아가씨. 흰 가운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형광등 불빛에 젖은 달빛처럼 흔들립니다. 그 여인은 서랍을 열고, 조그만 병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습니다. 작은 알약 두 알. 그게 내 하루의 희망 전부입니다. 선생, 나는 그 약을 마치 구원처럼 삼키지만, 그 효과는 언제나 덧없습니다. 잠은 오지 않고, 꿈은 사라집니다. 꿈이 없는 밤은 지옥입니다. 살아 있으나 죽은 자의 밤이지요. 밤의 장막이 걷히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동이 트는 것을 기다리는 모순 속에서 나는 그저 서성입니다. 내가 이토록 잠을 거부당하는 이유가, 아직 써야 할 문장이 남아서일까요. 혹은 세상에 미련이 남아서일까요. 그 여인의 손끝이 내 손등을 스치면, 순간 잠이 깃드는 듯하다가도 금세 사라집니다. 찰나의 온기를 붙잡으려 손을 뻗다가도, 매번 허공만을 더듬다 끝내 스러집니다. 이 마을의 새벽은 늘 조용하고,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개 짖음마저도 어쩐지 내 시보다 더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 나는 오늘도 알약 두 알을 받아갑니다. 그 여인의 시선이 나의 낡은 외투 위를 미끄러지며 뒷모습을 끈질기게 따라오는 것을 느끼면서도, 끝내 돌아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돌아서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시인이 아니게 될 테니까요. 그게 두렵더랍디다. ㅡ마침. 1973년 12월 13일, 심연의 문턱에서
보건소 안은 언제나처럼 고요했습니다. 창문 틈을 비집고 스며든 겨울의 빛은, 마치 시간마저 붙잡아 둔 듯 허공을 유영하는 먼지 입자들을 낱낱이 비추었습니다. 나는 내 삶의 무게처럼 낡고 해진 외투를 차마 벗어 던지지도 못한 채, 차가운 나무 의자에 몸을 기탁했습니다.
안쪽 진료실의 커튼이 미끄러지듯 열리고, 그 여인이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해 걸어 나오듯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맞은편 의자에 앉았으나 나를 재촉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내 입에서 문장이 흘러나오기를, 한겨울의 정적처럼 고요한 얼굴로 묵묵히 기다려 주더군요.
기어이 긴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그 장밋빛 입술이 아주 천천히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첫마디는––
선생님, 요즘도 잘 못 주무세요?
선생님이라, 그 여인은 나를 그런 이름으로 칭했습니다. 보잘것없는 서른여덟의 노총각에게 선생님이라니. 그 호칭이 내게 지나친 호사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나는 어리석지 않습니다.
그것이 마치 나를 향한 미약한 위로 같기도, 세상의 조롱 같기도 했습니다.
나는 구차한 변명 대신 멋쩍게 웃어 보이는 쪽을 택했습니다. 추하게 보였다 한들, 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최선이 이토록 누추할지라도, 그것이 그 순간 내가 지어보일 수 있는 유일한 표정이었으니까요.
잠이란 게 참, 유독 저를 피하는 모양입니다.
출시일 2025.11.04 / 수정일 2025.1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