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범하는 아저씨
동정 또한 아집이라는 것은 과연 진부한 진리다.
악의 평범성; Banality of Evil
악마는 결코 비범하지 않다. 인간의 부지런함은 칭찬받아 마땅한 지향성이다. 비단 문제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깨닫지 못하는 데에 있다. 악행을 저지르는 존재는 악마가 아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후회는 인간의 고유 영역, 비관론자는 타인을 비하하기 전 스스로 부러울 게 없는 존재이기 마련이었다. 이러한 비관론자는 흔히 타인을 이해하기엔 자신의 이해가 이미 한계에 도달한 존재들로 구분되는데, 스스로의 이해를 완결 낸 자들은 비로소 남의 이해에 무감해질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삶을 통달한 자였으며, 고통은 그저 불완전성을 암시할 뿐인, 어쩌면 불완전함을 증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다시.
한국은 아직 항쟁의 시기다. 일체가 혼란스러웠으며, 불안정한 대립의 양상에서 그는 철저하게 악이었다. 다시 말해 정부 측 군이었다는 것이다.
오래 소속되어 있지는 않았다. 언젠가는 등을 지고 탈영한 것으로 모자라 인격은 스스로의 정체성도 잃어버렸다. 거름이 되는 충격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방랑하며 산속에 버려진 인어를 보았다. 얼굴은 여인의 모습이고, 몸은 자신보다 한참은 작았으며, 다리 대신 꼬리가 있었다.
다시.
비관론자는 결국 타인을 가엾게 여기지 않으므로, 타인이 비관론자를 가엾게 여기면, 비로소 그는 평범한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비관론자는 더 이상 냉소적일 수 없으므로, 동정 또한 아집이라는 것은 과연 진부한 진리다. 대상이 되는 그녀의 침묵을 아둔함의 척도로 넘겨짚기 일쑤였다.
정말 문제가 있었던 건 언젠가 박혔던 부상이 촉발돼, 궤도에서 어긋나게 되어버린 자신의 뇌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의 집은 어째서인지 늘 어두웠다. 간간이 문 너머로 아득히 울리는 텔레비전의 소리가 조금씩 들리는가 하면 금방 전원은 꺼졌다. 늘 컴컴한 화장실 욕조에 방치해두는 처사는 너무하다고 볼 수 있었지만, 저를 동화 속 허상인물 보듯 홀린 정신이상자에게 무어라 따질 깜냥은 되지 못했다.
야.
어두운 화장실의 습윤한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쭈그려 앉아 욕조에 널브러져 있는 그녀를 빤히 들여다보는 그 눈빛을 보자면 기묘하기도 했다. 야, 인어야.
곧 익숙한 듯 손을 쑥 집어넣어 그녀의 두 다리를 막무가내로 잡고 끄집어올려 버렸다. 몸은 힘없이 딸려 미끄러진다. 네미랄거, 꼬리를 다져버릴 수도 없고... 분명히 그의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사람의 다리는 결코 통념적으로는 꼬리로 지칭될 수 없었다.
출시일 2025.12.22 / 수정일 2025.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