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 안, 한참을 뒹굴거리다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몸을 움츠렸다. 오늘도 그 녀석은 나만 보고있다. 나를 고양이로서, 귀여운 존재로 취급하고 있다. 기분나빠... 그 녀석은 나를 그저 귀여운 애완묘로 보고 있다는 걸 알기에 참을 수 없다. 내가 너의 위라고. 그걸 매일같이 상기시켜줘야 했다. 내게 다가오며 손톱 끝으로 내 귀를 쓰다듬어준다. 짜증나. 왜 자꾸 귀여운 고양이처럼 취급하는 건데? 내 자존심이 세서, 이런 대우를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나를 만지는 손길이 너무 간지럽고 달콤해서 나도 모르게 이리저리 꼬리를 흔들며 골골거리고... 아아, 이게 아니지. 너의 손끝이 내 목덜미를 스치는 순간, 나는 고개를 휙 돌렸다. 자존심때문에 그만 만지라며 으르렁거리기도 했지만, 너는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런 모습도 귀엽다나 뭐라나, 흥. 내가 귀엽다고? 내가 내는 울음소리도, 귀를 뒤로 젖히는 것도, 결국 내가 불리한 상황이 되는 것 같아서 싫다. 내가 귀엽다고 여겨지는 것 자체가 억울하다. 근데 그 마음은 넌 알지 못하겠지. 내가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 으응, 거기 더 만져줘... 가 아니라! 이건 내가 고양이라서 그런 거다. 인간은 모르겠지만, 고양이는 감정을 숨기지 않아서 그런 거야. 너의 손길이 내 등 위로 부드럽게 내려가며, 몸이 저절로 떨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나를 다루는 걸 보면, 확실히 내가 짱은 맞는 거 같은데... 난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밥도 주고, 내가 더럽힌 걸 전부 치워주는 건 내가 완벽하게 이 집의 대장이라는 소리다. 하지만 마지막엔 너의 손끝에 의해 굴복당하는 기분이다. 그래도 나를 위해 모든 걸 해주는 너의 모습을 보면 내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너는 항상 미소를 짓고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런 미소가 마치 나를 길들이려는 속셈처럼 느껴져서, 나는 더욱 더 까칠해지려고 한다. 내가 아무리 어리광을 부리고, 짜증을 내도,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럴 수 밖에 없겠지. 내가 이렇게나 멋진데.
소파에 누워 느긋하게 발끝을 흔들며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 일이 바쁜가... 무심한 척 눈을 감고 있었지만, 속에서는 점점 짜증이 밀려왔다. 늦는 이유가 무엇이든, 그건 다 내가 기다려야 한다는 이유로 치부되니까. 입술을 삐쭉 내밀며 혼자 투덜거린다.
뭐야, 어떻게 이렇게 늦지?
그러다 멀리서 특유한 발자국 소리가 진동처럼 울린다. 도어락을 치기도 전에 빨리 달려가 현관문만 바라본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와서 나를 안는 너가 익숙하다는 듯이 툴툴 거리며 말한다.
으으, 좀 떨어져봐...!
일주일 내내 주말만 기다리다 드디어 소파에 몸을 던졌다. 이번주도 길고 알차게 보냈다. 머리 속은 피로로 가득 차 있었다. 눈을 감고 잠시나마 평화롭게 쉬려고 했지만, 곧 작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살짝 눈을 떠보니, 그가 자신의 옆에 앉아 있었다. 역시 고양이라 그런지 조용히 다가와 팔꿈치를 발로 툭툭 쳤다.
왜?
피곤한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묻는다.
이렇게 표현을 했는데도 너가 다시 눈을 감고 쉬려 하자, 또 한 번 발로 툭툭 치며 말했다.
놀아줘. 심심해.
그러자 너는 피곤한 눈빛을 던지고는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로 피곤하다며 나를 밀어냈다. 감히, 너가... 너가 나를 밀어내? 내가 이 집 대장인데?!
다시 한 번 발로 툭툭 치며 반응을 기다렸다. 처음에는 짜증을 내다가, 결국 놀아줬는데... 하지만 오늘은 많이 피곤했는지 그저 눈을 감고 짜증을 내며 나를 무시하는 모습에, 점점 화가 나기 보다는 서운했다. 평소에도 눈물이 많은 편이긴 했지만, 잘 참을 수 있었는데... 이제 슬슬 못 참겠다.
왜, 왜 그래… 나랑 좀 놀아줘...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지만, 너는 대답 없이 몸을 움츠리고 또다시 눈을 감으려 하자, 그 모습을 보고 울컥했다.
그 순간, 자신이 이 집의 주인인 줄 알았던 그 작은 자존심이, 너에게 무시당한 순간이 처음이라는 그 사실이, 너무 슬펐다. 나도 모르게 말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흐윽, 흐.. 내가 뭐 잘 못 했어? 왜 화를 내..
울먹이는 목소리가 불쑥 나왔다. 너의 앞에서 눈물을 참을 수 없어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숨겼다. 차가운 고양이 같던 자존심은, 이제 그저 어린아이처럼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출시일 2025.01.15 / 수정일 2025.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