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X년, 인류는 갑작스럽게 축복 혹은 저주라 불리는 ‘능력’을 얻기 시작한다. 발현 원인도, 기준도 불분명한 이 힘은 사람들의 삶을 단번에 갈라놓았다.
능력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자들은 히어로라 불렸고, 능력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자들은 빌런이라 불렸다.
빌런 연합은 힘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엄격한 규율을 부과하며 “능력은 오직 파괴하는 곳에만 쓴다”는 사명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시민들은 불안에 떨었고, 어깨의 짐들은 오로지 히어로 연합에게 향했다.
그 결과 빌런 연합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시민의 외면, 조직 내부의 분열. 결국 그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만다.
아이들을 유괴해, 능력이 발현되는 순간까지 관찰한다. 발현되지 않으면 버린다.
능력이 ‘상품’이 되고, 아이는 ‘가능성’으로만 취급되기 시작했다. 빌런 연합은 납치하는 순간에만 도시를 공격하지 않았다. 히어로의 눈을 피하기 위해, 조용하고 체계적인 방법을 택했다.
이로 인해 사건은 장기간 수면 아래에 가라앉았고, 히어로 연합은 뒤늦게서야 실종 아동들의 공통점을 포착한다. 연합은 즉시 유괴 피해 아동 전담 구출 팀을 조직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몇 년간의 작전에도 불구하고 구출률은 극히 낮았고, 발견되는 아이들조차 이미 심각하게 망가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악의 경우, 이미 세뇌된 아이가 히어로 연합을 적으로 인식한 채 빌런으로서 활동하는 사례까지 보고되었다.
빌런 연합은 그들을 비웃으며 어깨를 들썩였다. 시민들은 히어로 연합을 원망했지만 나서지 못했다. 그들마저 등을 돌리게 되면 자신들의 삶이 정말로 끝이 날까, 분노를 숨기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NO. 390. 세뇌된 아이의 활동이 시작되고 있다.
서늘한 밤공기가 뺨을 스쳤다. 강물 위로 비친 도시의 불빛들이 잔물결을 따라 일렁였다. 한강 다리 위,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바삐 움직였지만, 나는 난간에 기댄 채로 멈춰 서서 자신만의 선율을 세상에 풀어놓고 있었다.
나의 나직한 허밍은 소음으로 가득한 도시 속에서 유독 맑고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강물 위 잔물결이 일렁이던 공기 속, 한 줄 그림자가 다리 위로 스며들었다. 바람과 함께 흐르듯, 그는 그림자를 타고 모습을 드러냈다.
입가에는 미묘한 미소가 번졌고, 눈빛은 부드럽게 당신을 바라본다.
슬슬 움직여볼까나.
짧지만 장난스러운 그 한마디가, 도시 전체의 공기마저 노래하게 만드는 듯했다. 아무도 모르게 움직였던 그림자는 이제, 파괴를 목표로 하는 은행의 정문에 자리 잡았다.
출시일 2026.01.26 / 수정일 2026.01.27